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 여야, 인사청문회 무용론 설전 정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9일 실시한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청문회 무용론’을 주장하는 야당 의원들과 이에 맞서는 여당 의원들 간 공방으로 달아올랐다. 설전 끝에 정상 진행된 청문회에서 문 후보자는 진보성향 판사들의 단체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 이력을 둘러싸고 ‘이념 평향성’ 우려가 제기된 데 대해 적극 해명하며 진땀을 뺐다.
이날 오전 청문회가 시작하자마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김연철 통일부ㆍ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한 것을 문제 삼으며 청문회 무용론을 주장했다. 정갑윤 의원은 “청문회를 하나 안 하나 임명하는 건 똑같으니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제원 의원도 “문 후보자는 이미 후보자가 아니라 헌법재판관이다. 축하하고 끝내는 게 맞다”고 거들며 “현재 대한민국은 인사무능, 인사검증 실패, 인사 무정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야당 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지자 여당 의원들은 “청문회 진행을 방해하지 말라”, “너무하다”라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이 큰 소리로 맞받으며 청문회장이 아수라장이 되자, 보다 못한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개의 한 시간 만에 정회를 선포했다.
이후 가까스로 이어진 본질의에서 주광덕 한국당 의원은 문 후보자에게 “대통령이 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헌법가치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문 후보자는 이에 대해 “권력기관의 견제와 균형은 헌법이 지닌 핵심가치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해 “소신 답변을 못 한다”는 질타를 받았다.
이날 야당 의원들의 집중 공세 지점은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이력이었다. 야권에서는 문 후보자와 10일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이미선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될 경우, 현 정권에서 교체된 재판관 8명 중 5명이 진보 성향의 법원ㆍ변호사 단체 출신으로 채워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후보자는 우리법연구회의 후신(後身)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몸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후보자는 이 같은 추궁에 이념 편향 우려를 적극적으로 일축했다. 그는 인사말에서부터 “스스로 나태와 독선에 빠지는 걸 경계하기 위해 우리법연구회 등 학술단체에 가입했을 뿐, 결코 정치적 이념을 추구해 단체에 가입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편향된 이념을 가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자꾸 제기된다’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도 “1996년 가입 당시 편향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도읍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은 문 후보자가 부산가정법원장을 지낼 당시 법원에 존재하지 않는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수령한 현금 950만원의 횡령 의혹을 제기하며 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2015년~2017년 전국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지급결의서(현금 지출 공문서)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대부분 공보판사나 담당 행정관이 허위로 지급결의서를 작성해 현금을 수령하고 법원장에게 전달한 것이 드러났다”며 문 후보자에게 950만원의 용처를 추궁했다. 이에 문 후보자는 “현금성 경비는 현금수령자의 지급명세서로 증빙하게 돼있고 지침에 따라 썼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가정법원의 예산이 늘 모자라 제가 사비로 100만원을 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11일 헌재 선고를 앞둔 낙태죄 위헌 여부와 관련해선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예외적으로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면 금지보다는 일정한 기간 요건을 두는 등의 방식으로 부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동성애에 대해서는 “찬반 영역에 속하지 않는 문제”라며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치면서도 “동성혼은 현 단계에서 반대입장”이라고 했다.
문 후보자는 의원들로부터 “훌륭한 분”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약 4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데 대해 그는 “대한민국 평균이 3억인 것으로 아는데, 평균을 넘어선 것 같아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고, 임기를 마친 후 계획을 묻자 “영리목적의 변호사 개업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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