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규軍을 테러조직 지정… ‘국토안보부 숙청’ 反이민 드라이브… 러 스캔들 면죄부 후 ‘재선 올인’

러시아 스캔들 족쇄에서 풀려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갈수록 거침 없다. 반(反) 이민, 대(對) 이란 압박, 친(親) 이스라엘 등 자신의 핵심 어젠다와 관련해 각종 마찰과 긴장 고조, 국내외적 논란에도 아랑곳 없이 마구잡이식 강공 드라이브에 나서고 있다. 2020년 대선 재선 가도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라면 어떤 카드라도 단행하며 정면 돌파하겠다는 태세다.
전날 키어스틴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을 전격 경질하며 불법 이민에 대한 강력 대응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정조준한 타깃은 이란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날 이란의 정예군인 혁명수비대(IRGC)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해 이란과의 긴장을 한층 고조시켰다.
미국은 알카에다나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 등 60여개 집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해왔으나, 외국 정부 정규군을 대상에 올린 것은 처음이다. 10만여명의 병력을 갖춘 이란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친미 왕정을 축출한 혁명정부의 헌법에 따라 탄생한 정예군으로서 이 군대가 운영하는 회사들이 이란 경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이란의 신정 체제를 뒷받침하는 군사 경제적 중심축이다. 대 이란 압박은 트럼프 정부의 핵심 과제지만, 이번 조치는 사실상 정부 기구 자체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는 전례 없는 것이어서 압박 수위를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에서 “국무부가 주도한 전례 없는 조치는 이란이 테러지원국일 뿐만 아니라 이란 혁명수비대가 테러리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재정을 지원하며 국정 운영의 도구로서 테러리즘을 조장한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테러조직 지정으로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 자산이 동결될 뿐만 아니라, 이란 혁명수비대와 거래를 하는 개인이나 기업도 미국 검찰이 기소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이란 핵 합의 탈퇴를 반대하고 이란 제재에도 미온적인 유럽연합(EU) 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란산 원유 수입과 관련해 한국 등 8개국이 5월 2일을 시한으로 예외 조치를 받고 있는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예외 연장 여부에 대해 “적절한 때에 결정할 것이다”고 말했다. WSJ은 한국 등 5개국은 제재 예외를 계속 인정받되 수입량은 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조치는 조셉 던포드 합참의장, 존 루드 정책차관 등 국방부 고위 인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됐다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 등이 전했다. 국방부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세력에 의해 미군이 보복 공격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는 것이다. 반면 강경파인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이날 미군 중부사령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맞불 조치를 취하며 즉각 반발했다.
군사적 긴장이나 국제적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 행보는 지난달 러시아 특검 수사에서 면죄부를 받은 이후 강화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아랍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포고문에 서명해 중동 정세를 흔들었고 베네수엘라 사태에는 군사개입 가능성까지 열어놨다.
이민 문제에선 그야말로 초강경 모드다. 불법 이민자 유입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닐슨 장관이 경질된 데 이날 국토안보부 산하 기구인 랜돌프 앨리스 비밀경호국 국장도 해임됐다. 아울러 프랜시스 시스나 시민권ㆍ이민서비스국(USCIS) 국장과 존 미트닉 법무감도 해임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 초대 국토안보 장관인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 인맥이 많은 국토안보부 조직 물갈이에 나선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이를 ‘국토안보부 숙청’으로 부르고 있다.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한 강경 대응을 위해 행정 공백 우려도 전혀 개의치 않는 칼질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에는 중남미 이민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3개국에 대한 원조를 끊기로 하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태세를 보여왔다. 트럼프 정부는 아울러 여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던 불법 이민자 부모와 자녀간 격리 조치를 재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전했다. 마크 크리코리안 이민연구센터장은 WP에 “이민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 이슈다”며 “2020년 선거가 그리 멀지 않은 상황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떻게 되든지 간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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