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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만큼 이재민 얘기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죠” 트라우마 치유하는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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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만큼 이재민 얘기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죠” 트라우마 치유하는 의사들

입력
2019.04.10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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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험공단ㆍ일산병원, 고성 산불 현장에서 의료봉사 활동 

지난 7일 강원도 고성군 천진초등학교에서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박영민(왼쪽) 가정의학과 교수가 이재민을 진료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제공
지난 7일 강원도 고성군 천진초등학교에서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박영민(왼쪽) 가정의학과 교수가 이재민을 진료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제공

지난 7일 강원도 고성 산불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천진초등학교. 건강보험공단과 일산병원, 속초시 의사회, 강릉 동인병원 등이 함께 설치한 의료봉사활동 현장에 한 60대 이재민이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몸에 너무 기운이 없어서 왔다”는 이 여성을 진료한 이는 공단 소속 일산병원의 박영민 가정의학과 교수였다. 첫눈에 봐도 ‘화재 트라우마’가 커 보였다. 박 교수가 천천히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하자 환자는 말문을 열었다. 이런 저런 일을 하다 계속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도전한 사업이 펜션이었는데 그마저 산불에 전소되고 말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불을 끄려고 해 보았지만 불길이 너무 거세 몸만 빠져 나왔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 같다”던 이재민은 박 교수의 손을 잡고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박 교수는 “화재로 인한 상실감과 트라우마가 큰 이재민이 다수 있었다”면서 “심한 경우는 불안ㆍ불면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는데 봉사활동 때는 향정신성 약물을 처방하지 않아 대신 두통이나 소화계 증상을 완화하는 약, 졸음이 올 수 있는 항히스타민계 약 등을 처방했다”고 밝혔다. 전소된 집에 약을 두고 나와 수치가 크게 올라 간 당뇨 환자, 고혈압 환자 등 만성질환자 이재민에게 2주치 약을 처방하기도 했다.

강원 원주시에 본사를 둔 건강보험공단과 공단 소속 일산병원 의료진 및 직원들은 지난 6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강원도 고성 일대 이재민 구호 및 피해 복구를 위해 7일부터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비인후과, 안과, 치과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기와 장비가 모두 갖춰져 있어 현장 진료가 가능한 대형 의료차량 2대도 파견했다. 9일에는 김용익 이사장이 재해현장을 살펴보고 고성군에 위치한 대피소와 속초시의 노인요양원을 방문, 피해복구 성금 3,000만원과 구호품을 전달했다.

공단과 일산병원은 국내는 물론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재해ㆍ재난 지역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2017년 강릉 산불화재, 천안 수해, 포항 지진피해와 2018년 영덕 태풍피해 현장에서도 공단 임직원들이 이재민들의 피해복구를 지원한 적 있다. 박영민 교수 역시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친 적 있다.

박 교수는 “약보다도 천천히 오랫동안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이재민의 심리적 안정을 도왔던 것 같다”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심적 고통을 겪는 와중에 우리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건강보험공단 및 일산병원 소속 의료진과 직원들이 4월 9일 서울 고성 산불 피해 현장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제공
건강보험공단 및 일산병원 소속 의료진과 직원들이 4월 9일 서울 고성 산불 피해 현장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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