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5선 도전에 나섰다. 부패 스캔들과 총리직 4선에 따른 유권자들의 거부감으로 재집권이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선거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물불 가리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격 지원과 총선에서 제1당이 되지 않아도 집권이 가능한 이 나라의 독특한 제도 때문에 이스라엘 초유의 ‘총리 5선’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이스라엘 전역 1만730개 투표소에서 유권자 630만명을 대상으로 총선이 시작됐다. 이번 선거에는 39개 정당이 참여했다. 투표는 오후 10시(한국시간 10일 오전 4시)에 종료될 예정이다. 이후 곧바로 개표에 착수한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네타냐후 총리의 5선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 자신은 물론 부인까지 비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기소되면서 중도연합 청백당의 베냐민 간츠 대표에 47%대 32%로 뒤졌다. 4월 31일까지 임기를 채우기만 하면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을 제치고 역대 최장수 총리에 오를 기회가 불과 며칠을 남기고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들은 선거일 직전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지지율이 간츠를 거의 따라잡았다고 전했다. 언론은 외교ㆍ안보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네타냐후 밀어주기가 이스라엘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강력한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있다.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포기한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을 관철하더니, 시리아 영토로 여겨졌던 골란고원까지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해줬다. 8일에는 국방부 실무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 이란 정규군인 ‘혁명수비대’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며 네타냐후 총리의 대 이란 강경정책에 힘을 실었다.
네타냐후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을 등에 업고 유례없는 대 아랍 강경 정책으로 표를 끌어모으고 있다. 8일 예루살렘 마지막 유세에서 “우파 정부가 위험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며 “재선될 경우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합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총선에서 간츠가 이끄는 중도연합 청백당이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에 근소하게 승리, 제1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히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원에도 불구, 잃어버린 민심을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외신들도 총 120석의 크네세트(의회)에서 리쿠드당과 청백당이 각각 30석 안팎을 차지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제1당 지위를 상실해도 재집권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특유의 정부구성제도 때문이다. 이스라엘 총선은 한국과 달린 지역구 출마자 없이 모든 의원을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의석수가 배정되면, 의회에서 선출한 대통령이 주요 정당 대표들과 접촉한 뒤 연립정부를 가장 잘 꾸릴 정파에 정부 구성권을 부여하게 된다. 제1당과 제2당의 의석 차이가 1~2석 차이에 불과하다면, 향후 정국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정치적 역량을 갖춘 인물이 총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총선에서 득표 수에서 정적에게 패하더라도 네타냐후 총리가 5선 야심을 버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복잡한 제도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의 5선 여부는 총선 직후에는 확인이 힘든 상황이다.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TI)’도 네타냐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우파 세력의 집권을 예측하면서도 “대통령의 의중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이 최근 “내각 구성 권리를 어느 당에 먼저 줄 것인지 고민”이라고 밝히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