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프롤로그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를 떠난 비행기가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한 것은 2018년 성탄절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하늘 가까운 높은 고도에 위치한 공항들이 그렇듯 조모 케냐타 공항도 활주로가 꽤나 길다. 좀 길게 미끄러지는가 싶던 비행기는 활주로 끝쪽을 돌아 적당한 계류장에 멈췄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부시다. 시원한 바람, 강렬한 햇살과 푸르디 푸른 하늘. 전형적인 동아프리카 고산지역 날씨다.
트랩을 내려와 비행기 머리 쪽으로 걸어오면서 문득 뒤를 돌아봤다. 방금 나를 태우고 온 비행기가 날카로운 엔진소리를 내며 서있다. 유선형의 부드러운 곡선이 풍선처럼 매끈하다. 하얀 곡면체와 그 뒤를 채우는 푸른 하늘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이 한 장의 사진.

3개월 가량 지난 3월 어느 날. 이 미려한 동체를 휴지처럼 구겨지고 찢긴 모습으로 TV 화면에서 다시 만났다. 그날도 이 비행기는 아디스아바바를 이륙해 나이로비로 향하던 중이었다. 비행기는 아디스아바바 남쪽 들녘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탑승객, 승무원 전원 사망. 선편을 다시 확인했다. ET-302. 필자가 탔던 사진 속 그 비행기다.
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수 백 만분의 일이라는 항공기 사고. 인명재천이고 사생유명(死生有命)이라지만 그 날의 탑승객 명단에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수 없다.
집을 나서는 순간 여행의 위험은 시작된다. 특히 우리가 편안함을 위해 마시는 커피를 찾아가는 여정은 역설적이게도 좀 더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커피 생산국 중에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곳도 있고, 주로 커피가 자라는 생산지들은 깊은 산악지역에 많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아직 분쟁 중이거나 전쟁의 잔불이 남아있는 곳이 더러 있다. 격렬한 내전중인 예멘의 커피 무역상은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것은 신의 뜻에 달렸다”고 인사한다. 전쟁은 아니더라도 반정부 조직이나 마약 밀매조직 등 범죄집단이 산 속에 은거하는 경우도 많다. 살인 범죄율(Murder Rates)이 우리보다 100배 이상인 중미국가도 있다. 숨어있는 위험을 이방인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그럼에도 커피를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와 확연히 다른 다양한 삶의 모습들과 눈이 시리게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 그리고 뜻 밖의 좋은 커피를 만나는 행운이 있기에 늘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가방을 꾸린다. 무엇보다 커피가 아니라면 절대 만날 수 없는 킬리만자로 산자락의 어느 늙은 농부, 안데스 고원 아이들과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가기 때문이다.
이제 그 먼 여정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복기하고자 한다.
최상기 커피프로페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