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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잘 꺼지지 않는 불씨

입력
2019.04.10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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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은 잡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잔불(사진 조용찬)
불길은 잡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잔불(사진 조용찬)

주말 내내 안절부절, 마음이 무겁고 복잡하였습니다. 지난달부터 숲속의 대한민국을 꿈꾸며 5,000만그루를 목표로 열심히 나무를 심어오는 여정 속에 식목일을 앞두고 들려온 강원도 산불소식 때문입니다. 게다가 매서웠던 며칠간의 날씨가 풀리고 지천에 참으로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꽃들로 마음이 조금씩 들뜨고 있었던 즈음이었기에,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잿빛으로 만들어 버린 산불의 잔해들은 더욱 마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넓은 도로에 불길이 넘나들고, 아이들이 다칠 뻔했던 순간들을 가까스로 넘긴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긴장감이 듭니다. 화면으로 만난 삶의 기반을 잃으신 분들의 망연한 모습들이 참으로 아프게 다가와 내내 맴돌았습니다. 산림청, 소방청, 지자체, 군부대 등등 한 마음이 되어 그 무서운 불길들을 잡느라 사투를 벌이셨던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사실 오늘, 광릉숲에서 이 편지를 쓰며 산불을 비롯한 무거운 이야기들이 지천인데 저라도 생명이 가득한 풀과 나무들의 이야기로 위로와 행복을 드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어 고민도 해보았지만, 이 재난에 대한 한마음이 필요한 때라 싶습니다.

산불진화를 경험해 보신 분들은 누구나 동감하시겠지만, 산불은 긴박하게 주불을 잡고 난 이후에도 완전하게 불씨를 제거 할 때까지 며칠이고 산을 오르내리며 진화작업을 계속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잔불 때문이지요. 잔불은 생각보다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지속됩니다. 완전히 불이 꺼졌다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돌아서도 조금 있으면 나무 그루터기 어딘가 틈새에 조금 남아있던 불씨들이 스멀스멀 연기를 피어 올리며 작은 바람에도 살아나니 말입니다. 정말 징글징글 합니다.

소방차가 닿는 길도 끝나고, 산길을 따라 좀 더 오를 수 있는 산림전문 방재차마저도 닿지 않는 좁은 산길부터는 산림 진화대, 산림관련 공무원을 비롯한 수많은 지원대가 이미 며칠간의 진화작업으로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등에 물을 지고 올랐다가 내려와 다시 물을 채우고 오르기를 반복합니다. 혹시 살아날지 모를 불씨들을 보고 또 보며 그렇게 산길을 다닙니다. 이런 작업을 할 때 입는 옷과 신발은 보통 옮겨 붙지 않게 하려고 두껍습니다. 산불 진화 작업을 할 때 머리 위로 쏟아지는 헬기의 물이라도 맞고 나면 천근만근 무겁지요. 그래도 혹씨 불씨가 되살아날까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산불이 날 가능성은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국립수목원을 둘러싼 광릉숲은 수백년을 보전해 온, 세계적인 숲이고 이 곳에 불이 나면 정말 큰 일이라고 모두들 알고 계십니다. 그래도 이 숲을 둘러싼 사찰에는 여러 번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달집태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수목원 직원들이 3월부터 주말을 반납하고 계도를 하고 다니지만 감시원이 돌아서고 나면, 주기적으로 읍사무소에서 거두어가는데도 농사나 생활쓰레기를 습관처럼 소각하고 마당이나 산소 혹은 야영장에서 불을 피워 음식을 해서 나눠 먹곤 합니다. 산불은 남의 일인 것입니다. 아직 원인은 완전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고성산불도 평소에 예측조차 하기 어려웠던 전신주에서 불씨가 피어났다고 하는데 우리 주변에서는 이 마른 봄에 살면서 그 수많은 불씨들에는 여전히 불감증이다 싶습니다.

앞으로 생겨날 불씨들은 모든 분들이 한마음이 되어 스스로 자각하고 서로서로 말려 주어 미리미리 꺼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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