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재판 중 졸았던 건 큰 결례” 사과
핵심 쟁점 헬기사격 관련 증거 부동의
검찰 공소장일본주의 문제 삼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8일 자신의 회고록과 관련한 사자명예훼손 사건 재판에서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쓴 건 “문학적 표현이었다”고 주장했다. 전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 목록에 대한 채택 여부에 대해 상당 부분 부동의 의견을 냈다. 전 전 대통령은 정주교 변호사를 통해 또 지난달 11일 열린 첫 재판 도중 꾸벅꾸벅 졸았던 데 대해 “긴장해서 졸았다. 큰 결례를 범했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정 변호사는 이날 오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 목록 576건 중 190여건에 대해 증거 채택을 거부했다. 정 변호사는 특히 재판의 핵심 쟁점인 5ㆍ18 당시 헬기 사격 여부와 관련해 목격자의 증언과 검찰 진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 헬기 탄흔 감정서, 5ㆍ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출격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백서, 5ㆍ18 당시 국방부가 작성한 일부 문건, 검찰 수사(1995년) 기록 일부 등에 대해 부동의 의견을 냈다.
정 변호사는 그러면서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서술한 데 대해선 “5ㆍ18헬기 사격을 주장한 고인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의미를 나타낸 의견 표명에 해당한 문학적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인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적시가 아닌 만큼 명예훼손의 고의성이 없고, 처벌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 측이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을 걸고 넘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검사 측은 “5ㆍ18 당시 강경진압을 진두지휘한 피고인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 단정한 뒤 고인에 대한 평가적 개념으로 회고록을 저술했다”며 “이런 경우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있다”고 반박했다.
정 변호사는 또 검찰의 공소장을 문제 삼기도 했다. 형사소송법상 공소장엔 사건과 관련해 법원의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나 기타 물건을 첨부할 수 없게 돼 있는데, 검찰이 공소사실과 무관한 피고인의 전과 기록과 회고록 출판 동기 등을 기재해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재판부에 “공소를 기각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는 공소사실을 특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관련 판례도 있다”며 “공소장에도 피고인의 회고록 집필 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쓴 것인데다, 피고인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적시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장 판사는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이 문제가 된다면 향후 재판을 진행하면서 공소장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위법성을 정리하겠다”고 양측의 논쟁을 끝냈다. 장 판사는 다음달 13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5ㆍ18 당시 헬기사격 목격자 5명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키로 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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