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 선수를 꿈꿨던 17세 영국 소년이 패션에 눈 뜬 건 병원에서였다. 사고로 다리를 다쳐 입원 중일 때 만난 디자이너 친구가 패션을 알려 줬다. 소년은 사이클을 그만 두고 옷 가게 점원이 됐다. 24세 때 영국 노팅엄에 9㎡의 작은 양복점을 냈다. 지금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의 권유였다. 소년의 꿈은 컸다. 양복점을 열고 6년만인 1976년 정장 2벌과 셔츠 6장, 니트 2장만 달랑 챙겨 프랑스 파리의 패션위크로 향했다. 소년은 가난했다. 패션쇼 참가비가 없어서 자신이 묵은 작은 호텔방 침대 위에 옷을 전시했다. 나흘간 아무도 찾지 않았다. 전시 마지막 날 드디어 첫 손님이 왔다. 무명의 디자이너인 소년은 비로소 자신을 소개했다.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안녕, 나는 폴 스미스야.)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73)의 이야기다. 그가 8일 한국을 찾았다. 올 6월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 5주년 기념으로 열리는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 전시를 앞두고서다. 그는 DDP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긴 무명의 시절을 보낸 이야기를 ‘흥겹게’ 풀어놨다. 키 193㎝에 호리호리한 체격인 그는 간담회 내내 익살스러운 표정이었다.
폴 스미스는 “디자이너의 전시라고 하면 과거에 얼마나 훌륭한 옷을 만들었는지 보여 주는 게 보통”이라며 “저는 어떤 식으로 옷을 만드는지,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를 다 보여주는 아주 솔직하고 친근한 전시를 할 생각”이라고 소개했다. 전시장에는 1970년 노팅엄에 낸 첫 가게와 첫 패션쇼장이었던 파리의 호텔방, 현재 작업실 등을 고스란히 옮겨 왔다. 그의 대표 디자인인 ‘멀티 스트라이프 패턴’(여러 겹 줄무늬)의 탄생 비화도 확인할 수 있다.
폴 스미스의 작업실에는 르 코르뷔지에와 앙리 마티스의 회화, 스노보드, 자전거, 인형, 단추 등 예술품과 잡동사니들이 한데 섞여 있다. “저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길거리 낙서 같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요. 영감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것을 베끼는 것이 아닙니다. 영감을 어떻게 창의적이고 독창적으로 풀어내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는 정장 소매나 깃 안쪽에 화려한 색을 쓰는 등 클래식을 살짝 비트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폴 스미스는 훌륭한 디자이너의 덕목으로 ‘개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개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기업과 합병하지 않고 독자브랜드를 고수한다고 했다. “다른 브랜드들처럼 대기업에 합병되면 디자이너로서의 창의성이 오염되거나 통제될 수 있습니다. 폴 스미스는 폴 스미스예요. 오늘날엔 그걸 지키는 것이 굉장히 희귀한 일이죠. 패션 디자인들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어요. 젊은 디자이너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법, 수평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키워야 해요.”
이번이 10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폴 스미스는 한국의 패션보다 문화에 관심을 보였다. “서울 익선동과 성수동은 이전의 것을 없애지 않고 재해석해서 공간을 더 좋게 만든 공간이에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가 매우 흥미롭더군요. 패션 디자이너도 그런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