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작동하는 청소기, 헤어 드라이어, 커피 메이커에 수많은 옷가지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퇴역 군인 제이크 오르타(56)씨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저택 쓰레기통에서 득한 물건들이다. 오르타씨는 이 같이 쓰레기통에서 주운 물건을 팔아 하루 약 30~40달러(약 3만4,000~4만5,000원)를 벌어들인다. 쓰레기 수거가 오르타씨의 직업인 셈이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억만장자들이 모여 사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집중 조명했다. 이들은 부호들이 버리는, 멀쩡하지만 재활용되지 않을 물건을 꺼내 되판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폐지 줍는 어르신’과 다르다. 샌프란시스코에서만 수백 명이 쓰레기 수거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이들의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이라는 평이 나온다.
NYT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 특히 쓰레기 수거자들이 많은 건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젊은 부자들 때문이다. 돈이 많다 보니, 이들은 입지 않는 옷가지나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을 되팔거나 재활용하는 대신, 길거리 쓰레기통에 손쉽게 버린다. 이곳 쓰레기 수거업체 ‘리콜로지’의 로버트 리드 대변인은 “기술자(tech people)가 늘어날수록 도시는 더욱 빠르게 변화한다”며 “그들은 주의 지속시간이 짧고, 중고품 판매점으로 갈만한 물건들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다”고 했다.
실제 수거자들이 쓰레기통에서 획득하는 물건들은 기상천외하다. 거의 입지 않은 고급 청바지, 나이키 운동화 등 의류는 물론이고 손목시계, 휴대폰, 아이패드, 자전거 등 값비싼 물건도 발견할 수 있다. 오르타씨는 지난달 은식기 한 상자를 줍기도 했다. 그가 스스로를 ‘쓰레기 수거자’ 보다는 ‘보물 사냥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쓰레기 수거는 어떤 면에서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쓰레기 수거자들의 모습을 기록했던 호주 사진작가 닉 마르자노는 NYT에 “그들이 하고 있는 건 일종의 시민 사업”이라며 “쓰레기 수거자들 덕분에 쓰레기 매립장으로 갈 뻔했던 물건들이 재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노숙인들이 쓰레기 수거를 통해 돈을 벌고, 길거리 상점들을 열면서 거리 환경이 한결 나아졌다고 NYT는 전했다.
다만 이 같은 상황이 극심한 빈부격차의 결과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또 다른 쓰레기 수거자 윌리엄 워싱턴씨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한 뒤 “어떤 사람의 쓰레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물”이라고 자조 섞인 답을 내놨다. NYT는 “대도시에도 쓰레기 수거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미국 자본주의의 극단을 보여준다”며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그들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몇 분 거리에 함께 살고 있는 게 2019년 모습”이라고 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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