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사 ‘상추쌈’ 운영
경남 하동 전광진ㆍ서혜영 부부
각박한 도시의 삶은 전원 생활을 꿈꾸게 한다. 꿈은 꿈일 뿐, 실행은 어렵다. 농사 지을 엄두가 안 나서,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인생 2막을 써내려 가는 데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고 또 미룬다.
경남 하동군에서 ‘상추쌈’이라는 이름의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부부 편집자 전광진(44), 서혜영(41)씨는 달랐다. 2008년 무작정 시골로 내려갔다. 첫 아이 임신을 알게 된 직후였다. 부부는 도시에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 마을로, 섬진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에 터를 잡았다. 11년이 훌쩍 흐르는 사이 아이가 셋이 됐다. 아이들을 데리고 ‘상경’한 상추쌈 부부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첫 일터는 생태주의 어린이 책을 주로 펴내는 보리 출판사였다. 책을 만들면서 도시와 시골 아이의 삶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속속들이 알게 됐다. 도시에 살며 돈을 더 많이 벌어 아이에게 모든 걸 쏟아 부을까 고민했지만, 부부 스스로 불행해질 것 같아서 마음을 바꿨다. “부모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아이도 불행할 수 밖에 없어요. 모두가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죠.”(서혜영) 서씨 부모님이 사는 하동으로 가기로 했다. 부부의 재산 9,000만 원을 전부 투자해 논 1,000평, 밭 500평에 6평짜리 집을 구했다. 귀농한 첫해 벼와 밀 농사를 시작했고, 다행히 그럭저럭 밥벌이가 됐다.
처음부터 출판사를 차리려던 것은 아니었다. 부부 눈에는 참 좋은데 어느 출판사에서도 내 주지 않는 책들이 쌓여 갔다.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2009년 출판사 등록을 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첫 책이 나왔고, 지금까지 8권을 냈다. “서울에서만 살았다면 몰랐을 뻔 했던 세상의 이야기와 가치들이 새삼 보이더라고요. 서울에서보다 삶이 풍부해졌죠.”(전광진)
상추쌈이 내는 책의 주제는 주로 ‘귀농 생활’이다. 교육과 의료, 자연주의 공동체 등 부부의 관심사를 그대로 책에 담았다. 첫 책 ‘스스로 몸을 돌보다’(2013)는 20대에 폐결핵 판정을 받은 저자가 30년 간 투병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건강법을 다뤘다. “하동에서 가장 가까운 소아과를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진주나 순천으로 가야 해요. 병원을 안 가고 살 순 없으니, 몸 상태가 병원에 갈 정도인지를 판단하는 게 중요하죠. ‘스스로 몸을…’은 그걸 도와주는 책이에요.”
부부가 귀농 생활에서 얻은 알짜 지혜를 책에 담는 셈이다. 삶이 녹아 든 책들이어서인지, 상추쌈의 책은 꽤 인기다. ‘스스로 몸을…’은 3쇄를 찍었고, 일본의 대목장 니시오카 쓰네카의 이야기를 담은 ‘나무에게 배운다(2013년)’도 4쇄를 넘어섰다.
두 사람은 도시의 편집자나 출판사가 지나칠 만한 책들만 골라서 낼 생각이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언어 문제를 다룬 책도 그 중 하나다. 다문화 가정이 많은 시골에 살아 보니 다문화 가정 별로 아이들의 학습 격차가 크다는 걸 알게 됐단다. 엄마의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거나 결혼 이주여성 차별이 심한 가정일 수록 아이의 언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말을 배우는 게 때가 있기 마련이에요. 초등학교 입학해서는 이미 늦었다고 보면 돼요. 유아기 시절부터 엄마가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교재가 필요해 보였지요.”(서혜영) 부부는 올해 말 출간을 목표로 ‘다문화 그림사전’을 준비하고 있다. 재일조선어학교에서 재일동포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데 사용한 교재를 취학 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래도 도시가, 서울이 그립지 않을까. 부부는 손사래를 쳤다. 대신 귀농을 고민하는 미래의 이웃들을 위한 조언을 줄줄이 읊었다. “비싼 땅을 사야 해요. 값이 싼 땅은 농사가 안되고 마을 인심도 박할 수 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이 많은 곳으로 가세요. 시골은 너무 한적해서 부모들이 ‘도어 투 도어’로 아이들을 픽업해야 해요. 기왕이면 문화시설이 많이 들어선 마을을 찾으시고요.’
땅값이며, 픽업이며, 서울의 부모들과 그다지 다른 삶은 아닌 듯했다. 부부도 인정했다. “귀농을 하기만 하면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사람 사는 건 시골이나 도시나 마찬가지에요. 시골이 다른 건 아이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부모가 잘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저희는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묻지 않아요. 아이들을 이미 잘 아니까요. 아이들과 아침, 저녁을 매일 함께 먹고 늘 눈 맞추며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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