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쇼 지난 4일 내한 공연
영국 피아니스트 크리스천 블랙쇼(70)의 이력을 생애주기별로 그리면 기혼 여성과 같은 ‘M자형’으로 축약된다. 한창 시절에 경력이 단절된 원인도 같다.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블랙쇼는 연주회를 포기하고 세 딸을 직접 길렀다. 라테파파(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는 30년 전 영국에서도 희귀했고, 온갖 분투에도 그에게 기회를 주는 공연장은 드물었다. 2009년 재기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가 지난 4일 국내 첫 연주회를 열었다. 3일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에서 만난 크리스천 블랙쇼는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들이 너무 작았고 때로 내 어머니와 장모의 건강도 챙겨야 했다”고 말했다.
블랙쇼는 전형적인 음악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러시아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수학하고 런던 왕립 음악원에서 고든 그린을 사사한 후, 197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입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피아니스트였던 부인은 그의 완벽한 지음(知音)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연주 초청을 받았지만 그라모폰과 EMI의 음반 녹음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만큼 자신만만했다.
1990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다른 누군가가 내 아이들을 돌보게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세 딸을 직접 길렀다. 그 많은 연주회 제안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애들을 돌봐야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매니지먼트사도 없었어요.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잊혔죠. 세상에는 뛰어난 연주자가 계속 나타나니까요. 50대 초반까지 굉장히 힘들었죠.”
육아와 연습을 어떻게 병행했느냐는 질문에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능력이 있다. 필요할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연습하게 마련”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단절(gap)을 겪으면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서 더 엄격해야 해요. 이전보다 연습할 시간은 줄었지만, 더 열심히 연주했죠. 내가 이 연주에 100% 헌신하고 있는지 되물었죠.”
블랙쇼는 “나는 늘 연주해왔다”고 강조했다.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은 이후 지방 연주회 일정을 잡고 무대에 섰지만, 그의 명성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었다. 음반이 일종의 명함처럼 작용하는 클래식계에서 그는 명함이 없는 연주자였다.
“2009년 여름 이상하게 일이 잘 풀렸어요. 세인트 조지 브리스톨에서 연주를 앞두고 있었는데 파이낸셜타임스의 저명한 음악평론가, 앤드루 클락이 저에 대한 기사를 썼죠.”
이때 선보인 모차르트 소나타 시리즈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기적을 만들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사이몬 래틀 , 지안드레아 노세다, 네빌 마리너 등 세계적인 지휘자와 협연했고, 2013년 헬렌스뮤직 페스티벌 공동 예술감독이 됐다. 블랙쇼는 “사실 15년 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곡을 연주했다. 그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2015년 위그모어홀에서 연주한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는 네 장의 음반으로 발매돼, 뉴욕타임스가 꼽은 ‘올해의 베스트 클래식 음반’이 됐다.
‘블랙쇼의 연주는 우아함, 성찰, 촉각의 섬세함 등 ‘낡은 미덕’을 밝힌다. 대담한 연주 기법이 유행하는 요즘의 스타일과 상충되지만 실제로는 관객이 기대하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와 슈만의 그것이다.’(앤드루 클락)
“사람들이 왜 공연장에 올까를 생각한 적 있어요. 감명 받았던 연주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공연은 영혼의 경험이 돼야 해요. 그런 마음으로 연주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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