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 말년’은 곤혹스러웠다. 조 회장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겪었고, 가족들의 ‘갑질’ 사태로 주주들의 한층 강해진 견제 속에서 별세 직전엔 대한항공 이사직도 잃었다.
◇한진해운 파산 부른 구조조정
조양호 회장의 말년 경영 가시밭길은 ‘한진해운 부실’로 본격화 됐다. 한진해운은 1977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설립해, 다음해 중동항로 개척, 79년 북미 서안 항로와 83년 북미 동안항로 개설 등으로 국내 해운업 역사를 써 내려간 곳이다. 현대상선보다 1년 늦게 뛰어들었지만, 1940년대에 설립된 ‘국내 1호 선사’ 대한상선(대한선주)을 88년에 인수해 유럽항로를 넘겨받으며 국내 1위 선사로 부상해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한진해운 경영을 맡았던 조중훈 회장의 셋째 아들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세상을 떠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한진해운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해운업이 좋았던 시절의 낙관적 전망을 믿고 10년 이상 장기 용선료 계약을 맺은 게 큰 화근이었다. 금융위기로 운임이 급락했는데도 이 계약에 따라 시세보다 5배나 비싼 용선료를 매년 수천억원씩 부담해야 했다. 급기야 2013년 2423억원 영업손실 등 3년 연속 적자를 내며 침몰 위기에 처했다.
결국 조양호 회장이 등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대한항공 등 그룹 주력 계열사가 1조2,000억원대의 자금 수혈에 나서고도 부채는 2015년 5조6,000억원에 달하는 등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2016년 4월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갔고, 채권단의 자구안 요구를 끝내 충족하지 못해 자금 지원이 중단되자 같은 해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다음해 법원이 파산 선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조양호 회장으로선 대한항공 등 계열사 자금까지 끌어 지원했지만 그룹 내부에 남기기는커녕 조중훈 창업주가 세워 키운 해운사를 해체 수순으로 몰아간 꼴이라 뼈아플 수 밖에 없었다.
◇잇단 갑질 파문에 주주들도 들썩
한진해운으로 끝이 아니었다. 조양호 회장은 일가의 ‘갑질’ 이슈로 또 경영 위기에 몰린다.
2014년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황’을 시작으로,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의 ‘물컵 갑질’과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갑질까지, 한진그룹 대내외적으로 오너가 리스크만 키운다는 평가가 터져 나왔다. 이런 흐름은 결국 최근 국민연금 등 주주 행동주의 흐름과 맞물려 조양호 회장에게 위기가 됐다.
특히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요 주주들의 압박은 절정을 이뤘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이후 첫 본격 적용 대상으로 대한항공을 겨냥했고, 토종 행동주의 펀드인 KCGI(일명 강성부펀드)는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주주제안 관철에 나섰다. 이런 공세에 밀려 조양호 회장은 결국 대한항공 주총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고 말았다.
조양호 회장이 이후에도 대한항공 이사회 내 우호세력을 통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으리란 관측이 우세했지만, 그에게 굴욕적인 상황임은 분명했다. 선대인 조중훈 회장에게 대한항공을 물려받은 이래 처음으로 조양호 회장의 사내 공식 직위가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국내 대기업 오너 중 처음으로 주주들의 요구로 경영진에서 물러났다는 오명을 얻은 탓이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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