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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원 “공시가 산정 일원화를” 감정평가사 “견제 장치 없어진다”

입력
2019.04.08 04:40
수정
2019.04.08 15: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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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쭉날쭉’ 공시가 산정 주체 공방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 주택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 주택가 모습. 연합뉴스

올해 비슷한 지역의 단독주택 공시가격조차 편차가 크다는 논란이 지속되면서 ‘공시가격 산정을 누가 하는 게 맞는지’를 둘러싼 공방도 치열해지고 있다. 저마다 ‘객관ㆍ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누가 더 적임인지를 놓고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는 분위기다.

7일 국토교통부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토지와 단독주택은 표준지(50만필지)와 표준 단독주택(22만 가구)을 뽑아 먼저 가격을 산정하고, 나머지 개별지와 개별 단독주택은 표준 가격을 참고 삼아 가격을 정하고 있다. 반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 1,300만 가구는 따로 표준을 만들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표준주택과 공동주택은 한국감정원이, 표준지는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회원인 감정평가사들이, 개별지와 개별 주택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각각 나눠 가격을 산정하고 있다. 최근 표준주택과 개별주택 공시가 상승률이 최대 7%포인트까지 벌어지자 가격 산정의 주체가 다른 게 이유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감정원 “공시가 조사 일원화해야”

한국감정원이 이런 의혹에 먼저 포문을 열었다. 1989년 공시가 제도를 처음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채미옥 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최근 언론간담회에서 “정부 주도의 전국 단일기준 가격 조사체계를 유지해야 조사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며 공시가 조사ㆍ산정 일원화를 주장했다. 감정원과 민간 평가사, 지자체로 나뉜 현행 시스템을 정부(감정원) 중심으로 통일하자는 얘기다.

그는 지자체가 개별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것을 두고 “과거 공시가 제도 도입 초기에도 지자체 공무원들의 조사는 가격편차가 컸다”며 “관선 지자체장 때도 그랬는데, 지금처럼 선출직 민선 단체장 산하에선 지역별 가격차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2월 활동을 종료한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도 감정원과 민간으로 나눠진 평가 주체를 공적기관으로 일원화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부동산 공시제도 비교. 그래픽=박구원 기자
부동산 공시제도 비교. 그래픽=박구원 기자

◇감정평가사 “견제 장치 없어져”

이런 감정원의 주장에 감정평가사들은 크게 반발한다. 감정원의 공시가 산정 방식이 불투명한데다 감정원 직원의 전문성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감정평가사는 “지금처럼 감정원과 감정평가사, 지자체로 조사 주체가 다르면 그나마 전횡을 견제할 장치라도 있지만 감정원이 공시업무를 독점하면 이마저 없어지는 셈”이라며 “감정원의 주장은 조사부터 검증까지 ‘셀프’로 하겠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감정원 직원의 전문성을 문제 삼는다. 조은경 감정평가사협회 홍보이사는 유튜브영상을 통해 “표준지는 50만건에 감정평가사 1,078명이 동원되는데, 표준 및 공동 주택 1,300만여호는 감정원 직원 500명이 맡고 있다”며 “그나마 감정평가 자격증이 있는 직원도 220여명에 불과해 전문성도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감정평가 업계에서는 감정원이 공시업무를 독점할 경우, 정치권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거란 의심도 적지 않다.

개별주택 산정을 맡는 지자체 역시 답답함을 토로한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지역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치구”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자치구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원칙에 맞춰 가격을 산정했는데도, 사후 조사를 한다고 해 당황스러운데 이제는 조사 일원화까지 이야기하니 할 말이 없다”고 불신을 드러냈다.

이처럼 조사 주체 사이의 갈등이 커지자 국토부는 "일원화에 대한 주장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지금 당장 검토하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전문가도 갑론을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치열하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감정평가사 수가 감정원 직원보다 훨씬 많은데다 현장 전문성이 높은 만큼 표준주택 가격은 민간 감정평가사가 하는 게 낫다”며 “감정평가사가 한 것을 추후 감정원이 검증한다면 객관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책임성 있는 공적 조직인 감정원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민간협회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수직적인 분업 관계를 이루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 국장은 “지자체에 권한을 조금 더 넘기고 국토부가 이를 관리감독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공시가 편차 논란이 상당부분 불투명한 산정 과정에서 비롯된 만큼, 가격결정 과정부터 공개하는 것이 우선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공시가격 산정 근거부터 밝히고 그 뒤에 일원화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감정원은 근거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결국 일원화 주장은 제 밥그릇 지키기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토부 관행혁신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는 이강훈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전국적 통일성 등의 측면에서는 감정원이 맡는 게 유리하지만, 우선 공시가격 산정 근거 공개 문제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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