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ㆍ물적 피해 줄인 산불 대응]
소방청 독립으로 관할구분 사라져 소방차 820여대 신속히 몰려와
“소방 공무원 국가직 전환” 청원에 순식간에 13만 여명 지지 쏟아져
2005년 4월 ‘양양 산불’을 기억하는 강원도민에게 지난 4일 밤 강원 고성군에서 시작해 강풍을 타고 맹렬히 확산된 산불은 공포 자체였다. 또 한번 대참사의 악몽이 스멀거렸지만 고성ㆍ속초 산불은 약 13시간 만에 주요 불줄기가 잡혔고, 강릉과 동해 산불도 17시간쯤 지나 큰 불길이 잡혔다. 역대 강원 지역 산불에 비해서도 인적ㆍ물적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초속 30m에 이르는 강풍에 의한 산불 확산을 예방하지는 못했어도 대응 역량은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불 진화 능력이 향상된 원동력으로는 2017년 7월 소방청의 ‘독립’이 우선 꼽힌다. 소방청이 독립기관이 되며 출동지침이 개정, 대형 화재의 경우 관할 지역 구분 없이 소방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소방청이 지난 4일 오후 9시 44분쯤 화재 대응 최고 수위인 3단계를 발령하며 제주를 제외한 전국 시도에 지원을 요청하자 하룻밤 사이 소방차 820여 대와 소방헬기 51대가 산불 현장에 집결했다.
2017년 6월 개통된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소방차들의 강원 동해안 산불 현장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양양 화재 때만 해도 속초나 고성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한 뒤 동해고속도로나 7번 국도로 갈아타고 위로 올라가야 닿을 수 있었다.
군과 경찰의 적극적인 지원도 산불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일조했다. 군은 5일 오전 장병 약 1만명과 헬기 32대, 군 소방차 26대를 투입해 산불 잡기에 힘을 보탰다. 잔불 정리 등 에 투입된 장병들에겐 마스크와 흰색 방탄헬멧 등 이전보다 진일보한 안전장비도 지급됐다.
경찰도 1,700여 명이 화재를 막기 위해 뜨거운 땀방울을 흘렸다. 특히 화마가 강풍을 타고 급속히 퍼졌던 4일 밤 속초경찰서 경찰관들은 발화지점인 고성군 토성면에서 불과 7㎞ 떨어진 고려노벨의 화약창고를 파악하고 화약류 5톤을 모두 옮겨 2차 참사를 막았다. 경찰들이 화약류를 이동시킨 뒤 화마는 화약창고를 삼켰다.
우리 주변의 숨은 영웅들의 활약도 빛을 발했다. 산불이 학교로 달려들 때 고무호스로 물을 뿌리며 끝까지 교실을 지킨 강릉 옥계중학교 이정인(56) 주무관, 노약자와 아이들을 오토바이에 태워 대피시킨 식당 배달원들, 기꺼이 불길과 맞선 의용 소방대원 등이 모두 신속한 주역이라는 얘기다.
특히 화마와 사투를 벌인 소방관 3,000여 명에게는 국민적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소방차 820여 대가 어둠을 뚫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헬기가 뜰 수 없는 야간에 산불과 의연히 맞선 소방관들의 모습은 많은 뉴스 시청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효율적인 협업 속에 소방관을 비롯한 진화인력의 인명피해도 제로(0)였다. 정문호 소방청장은 820여 대의 소방차가 모인 뒤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도와준 전국 시도와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방관들의 헌신에 걸맞는 대우는 여전히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이번 산불 사태에 보여준 전국 소방공무원들의 공조를 계기로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라는 여론의 불길이 거세지고 있다.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에 7일 현재 13만명이 넘는 인원이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더구나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에서 결론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국회의 협조다.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바꾸려면 소방기본법, 소방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 소위 '신분 3법' 등 총 4가지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는 3월 임시국회에서 공전만 거듭했다. 법 개정 이후 준비 과정을 거쳐 올 하반기부터 국가직 전환을 시행하려던 소방청 계획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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