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보수당과 (연정 파트너격인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DUP)에서 과반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면,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원을 가로질러 초당적인 접근을 하는 것뿐입니다.”
6일 오후(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이 같이 밝히면서 그간의 고집을 접고 야당에 손을 내밀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합의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려면 제1야당인 노동당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EU가 브렉시트 시한 연장 요청을 승인해 줄지조차 불투명하고, 노동당도 ‘정부가 더 변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어 실제 합의안 마련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제는 EU와의 합의 아래 떠나거나 아예 떠나지 않는 것 사이의 냉혹한 선택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당과의 합의가 오래 걸릴수록 영국이 EU를 떠나지 못하는 ‘노(No) 브렉시트’의 위험성도 커진다며 사태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메이 총리는 최근 ‘소프트 브렉시트’를 선호하는 노동당에 손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일부터 사흘간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를 만나 대안을 논의했음에도 결과를 내진 못했다. 코빈 대표는 “메이 총리가 한계선(레드라인)을 더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다”며 정부의 실질적인 입장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메이 총리는 이날 성명에서 “‘EU 내 이동의 자유’를 끝내고 좋은 합의 아래 떠나는 것,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은 양당이 모두 원하는 바”라면서 또다시 협력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와 관련,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메이 총리가 노동당 설득을 위해 EU와의 관세협정을 합의안에 명문화하는 방안, 오는 10일 EU 정상회의에서 야당에 대표단 자리를 제공하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애초 지난달 29일 EU를 떠날 예정이었던 영국은 오는 12일로 한 차례 탈퇴 시점을 미뤘다. 그러나 브렉시트 합의안은 세 번째 표결에서도 하원 통과에 실패했고, 메이 총리는 EU 측에 오는 6월 30일까지 추가로 연기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이에 대한 수용 여부는 10일 EU 정상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U 내에서도 ‘연장 기간’을 두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가디언은 EU 고위 소식통을 인용,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메이 총리의 ‘짧은 브렉시트 연기’ 방안을 지지할 의사가 있다고 전했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달 초 “(EU가) 영국의 정치적 위기로 인한 인질 노릇을 언제까지나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를 중심으로 스페인, 벨기에 등은 강경 태세로 나서고 있다. 영국이 새로운 제안을 하지 않는 한, 오는 12일 예정대로 아무 합의 없이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를 하는 데 대한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이다. 경제적 충격 예방을 위해 오는 12일부터 ‘2주 정도의’ 짧은 연장은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양보는 더 이상 없다는 태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국과 유럽 모두에 ‘최악의 상황’으로 여겨지던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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