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이론연구센터 ‘율촌 법이론연구총서’ 발간
대한민국 사법부는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다. 재판 거래 의혹을 위시한 사법농단 사태에다 안희정 사건 1∙2심 오락가락 판결 등으로 사법부 불신이 커지고 있다. ‘반(反) 헌법 기관’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사법부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위기가 극심할수록 해법은 ‘기본’에 있는 법. 때 마침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법이론연구센터가 ‘율촌 법이론연구총서’를 냈다. 법의 사회적 의미, 사법부와 법관의 역할 등을 법 철학의 관점에서 다시 묻는 기초법학 학술서다. 법무법인 율촌이 기금을 지원한 기획으로, 최근 3권이 먼저 나왔다.
시리즈의 문을 연 1권은 ‘로마법의 향연’이다. 국내 로마법 연구를 개척한 세계적 로마법 권위자 최병조 서울대 명예교수의 관련 논문 13편을 모았다. 로마법은 서양법의 모태로, 근대 법학의 원류로 꼽힌다. 한국 민법도 로마법을 계승한 것이다. 국제분쟁이 일어났을 때 독일법, 미국법을 먼저 찾다가도 최종적으로는 로마법을 들여다보고 판단을 구하곤 한다.
2권인 ‘법복 입은 정의’는 세계적 법 철학자로 2013년 타계한 로널드 드워킨 예일대 로스쿨 교수의 유작이다. 그는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요소를 고민하지 않고 오직 법 자체만을 형식적으로 파악하려는 법 실증주의 등을 비판하면서 법 정의 실천 방안을 설파한다.
3권 ‘법률가들처럼 사고하는 법’은 보다 현실적 조언을 제시한다. 법률가들은 법을 적용하고 해석할 때 ‘올바른 결정’보다는 ‘법에 따르는 결정’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최선의 결정이 나오지 못하더라도, 전례를 따르면 법의 권위에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 사고의 본령은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 사이에서 관심을 배분하고 균형을 잡는 일이라고 책은 강조한다. 법은 불변의 영역이 아닌 만큼, 시대의 요구와 국민 눈높이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시리즈 총괄 기획을 맡은 김도균 서울대 법대 교수는 7일 전화통화에서 “누구보다 현직 판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며 “‘내 판단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책이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해 잘못을 저지른 법조인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도 했다.
매년 3, 4권씩 출간 예정인 다음 책에선 인공지능(AI) 시대 로봇 판사, 생명 윤리와 법학 등을 다룰 예정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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