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피소가 바로 마련된 건 고맙지만 어르신들이 기댈 벽 없는 바닥에 앉아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
강원 고성군 천진초등학교의 산불 피해자 대피소에서 만난 김옥순(60)씨는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집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놀라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끌고 나왔다”며 말끝을 흐렸다. 86세의 어머니가 평생 살아온 집이 한 순간에 재로 변하는 충격 속에서 김씨는 기약 없이 대피소에서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다.
강원 산불 발생 이틀째인 6일 천진초등학교 대피소는 김씨를 비롯한 138명의 주민들로 가득했다. 천진초등학교 외에도 인근의 아야진초등학교, 고성ㆍ속초ㆍ강릉ㆍ동해의 마을회관 등의 대피소를 합해 약 620명이 집을 잃은 충격과 앞날에 대한 근심에 휩싸여 있다.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고령이라 제대로 된 숙소와 보살핌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천진초등학교에서 피해자 상담을 돕고 있는 홍인숙 정다운 심리상담연구소 소장은 “20% 정도는 편마비가 있는 등, 혼자 움직이기 힘든 분들“이라며 “보살필 가족이 없어 화장실도 다니기 힘든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홍 소장은 “대피소에서도 잠을 자다가 뜨겁다며 깨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천진초등학교 강당에서 의료 지원을 하고 있는 이승준 강원대병원장 역시 “정신적 충격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 불을 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 가스로 인한 기침, 가래 등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많아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피소로 피해자들이 몰리다 보니 아직 머물 곳을 찾지 못한 피해자도 많다. 임경수(59)씨도 집이 다 타서 첫날은 아들 집에 있다 이날 아침 천진초등학교로 왔는데, 자리가 없어 대신 동광고등학교 대피소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임씨는 “혼자 있으면 눈물이 나와서 아는 사람들이 있는 여기 천진초등학교 대피소에 와서 떠들기라도 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취임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산불 피해 지역을 방문한 뒤 천진초등학교 대피소를 찾아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진 장관은 “식사, 의류 등 당장 급한 것은 빨리 지원해 주도록 하고 임시 거주지의 경우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그 전까지는 마을회관 등을 통해 빠르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 산불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서 해당 지역에 피해주민 구호, 주거용 건축물 복구비 등 각종 지원 제공이 가능해졌다. 행정안전부는 이에 따른 세부적인 지원 사항을 중대본 회의를 거쳐 정할 방침이다.
고성=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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