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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영원한 ‘껌딱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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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영원한 ‘껌딱지’입니다

입력
2019.04.0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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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애 대구시의원이 꼽은 내 인생의 히트곡, 태진아의 ‘사모곡’

“엄마, 왜 이틀씩이나 늦었어요?”

어머니는 일찍부터 장사를 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보부상으로 변신했다. 한번 장사를 나가면 2~3일은 예사였다. 70년대 초, 상주에서 경주로 명주수의를 팔러 가면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는 떠나기 전 언제 돌아올지 알려줬다. 나는 텅 빈 집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렸다. 외동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 그런지 어릴 때부터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책장을 넘기다가도 문득 사고가 난 건 아닌지, 다치진 않았는지, 혹여 돌아오지 못하시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나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럴 일이 좀 있었다.”

어머니는 옷을 툴툴 털면서 별일 아니란 듯이 말했다. 늘 그랬다. 어머니는 좀체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머니가 넋두리를 하거나 눈물을 훔치는 걸 본 기억이 없었다. 언제나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날도 내가 몇 번이나 채근하자 이틀이나 늦은 이유를 고백했다.

“연탄가스를 마셨다. 죽다가 살았다.”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지만,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밀린 설거지를 했다. 나는 밤새 잠을 못 이뤘다. 집에 돌아와 마음이 편해 그런지 낮게 코를 골았던 어머니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머니의 팔을 부여잡고 밤을 새다시피 했다.

새처럼 여린 나와 달리 어머니는 여장부였다. 우선 키가 컸다. 163cm으로 당시로선 웬만한 남자만큼이나 큰 키였다. 거기다 통뼈에다 체격도 당당해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었을 거라고 했다.

어머니는 내가 당신을 닮길 원하셨던 듯하다. 내게 늘 독립심과 정직을 가르쳤다. 습관처럼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당부했다. 그 말씀들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머니가 당신이 하신 말씀 그대로 사셨기 때문이었다. 연탄가스에 취해서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뻔한 얼마 후에도 다시 길을 나섰다. 껌딱지 딸과 함께 당당하게, 또 정직하게 살아내려고 굳세게 하루하루를 버텨낸 거였다.

어머니는 이제 호호 할머니가 되었다. 요양원에서도 ‘선배님’ 축에 속한다. 뼈만 앙상한 어머니의 팔목을 보면서 ‘사모곡’이라는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을 때가 많다. 노래 속에 등장하는 자나 깨나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바로 내 어머니의 모습이다. 하루 종일 어머니 곁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결혼한 지 40년 다 되어가고 딸 셋 모두 장성했지만 나는 그때 그 시절처럼 아직도 엄마의 껌딱지다.

<윤영애 대구시의원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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