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서풍이 태백산맥 넘으며 고온건조, 가속도 붙어… 낙산사 산불 등 ‘주범’
고성 산불이 4일 삽시간에 확대된 원인으로 지목된 ‘양간지풍(襄杆之風)’은 태풍급 위력을 앞세워 밤 사이 속초 도심까지 집어삼켰다. 봄철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서풍이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불어 닥친 것이 피해를 키웠다.
5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불이 시작될 무렵 미시령 자동관측장비에는 순간 초속 35.6m의 강풍이 관측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대 풍속(10분 평균) 17㎧ 이상을 태풍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고성 산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이번 양간지풍은 나무가 뽑히거나 오래된 집채가 날아가는 등의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중형급’ 태풍에 버금가는 위력을 과시했다.
동해안 양양과 간성(고성) 사이에서 부는 국지적 강풍인 양간지풍은 봄철(4, 5월) 남고북저 형태의 기압 배치에서 불어온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며 고온건조해지면서 가속도까지 붙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동해안 지역이 대형 산불의 취약지로 꼽히는 것도 이 양간지풍 때문이다. 1996년 고성 산불을 비롯해 2000년 산림 2만3,000㏊ 이상을 태우며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동해안 산불, 2005년 양양 낙산사 산불 모두 양간지풍이 피해를 키운 ‘주범’이었다.
4일 미시령과 양양, 고성, 속초, 대관령 등의 순간 풍속은 초속 20~30m를 넘나들었다. 초속 30m는 자동차가 시속 108㎞로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 속도다. 100㎞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을 때 맞는 정도의 강풍이 산불을 키웠다는 뜻이다. 이런 강풍이 10분 이상 계속될 경우 달리는 기차도 휘게 할 수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만약 이 바람이 평지에서 불었다면 약 70~80㎏의 성인 남자가 버티지 못하고 바람에 쓰러질 정도의 위력”이라고 설명했다.
강원영동에 내려진 강풍경보는 5일 오후 해제된 상태다. 하지만 이날 오후 3시 기준 여전히 이 지역에 강풍주의보가 발효 중인데다 대기가 건조해 추가 화재 위험도 있는 상황이다. 주말인 6~7일 사이 비 소식이 있지만 5㎜ 미만에 불과해 잔불 진화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반기성 케이웨더 센터장은 “5월 초까지 양간지풍 가능성이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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