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혼다 브랜드의 홍보를 담당하는 한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와의 이야기는 ‘혼다 어코드의 드라이빙’과 ‘드라이빙의 즐거움’이 주제였다. 모터스포츠 취재는 물론 서킷 주행 등으로 인해 당시 국내의 그 어떤 기자들보다도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서킷을 다니고, 또 달리고 있던 상황이라 ‘잘 달리는 차량인 만큼 어코드로 서킷 주행을 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평소의 서킷 시승기를 자주 보았던 해당 담당자 또한 ‘언젠가’라는 단서와 함께 서킷을 달리는 어코드를 떠올렸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이 흐르고, 어코드는 9세대에서 10세대로 완전한 탈바꿈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어코드와 그렇게 인제스피디움을 달리게 되었다.

어코드는 스포츠 세단이 아니다
자동차를 좋아하고, 또 드라이빙을 즐기는 운전자는 모두 혼다 어코드가 잘 달리는 차량이라는 걸 잘 안다.
과거 VTEC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의 어코드는 물론이고 지난 9세대 어코드까지 어코드는 그 존재를 가리지 않고 탁월한 주행 성능과 드라이빙의 즐거움으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머리 속에서 지우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코드는 말 그대로 ‘잘 달리는 세단’이지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스포츠 세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10세대 어코드를 보더라도 그렇다. 5m가 넘는 전장을 앞세울 만큼 체격을 급격히 불렸던 몇 세대 전의 어코드 이후 체격을 줄인 지금에도 4.9m에 육박하는 긴 전장을 보유한 세단이다. 여기에 실내 공간의 여유와 주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전륜구동의 레이아웃 또한 어코드가 ‘패밀리 세단’이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실내 공간, 시트를 둘러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세단에서 볼 수 있는, 사이드를 살린 스포츠 시트는 온데간데 없고, 장거리 주행 시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넉넉한 시트가 자리하고 있기 떄문이다. 스티어링 휠도 패들 시프트를 품었을 뿐 평범한 형태의 스티어링 휠이며, 알칸타라나 카본파이버 같은 ‘스포티한 요소’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실제 다른 포트폴리오를 보더라도 노골적인 드라이빙 DNA를 드러내는 건 ‘타입 R’과 NSX에 집중된 모습이다.

누구에게나 혹독한 장소
단도직입적으로 인제스피디움은 참으로 혹독하고 매정한 곳이다. 19개의 코너와 3.908km의 서킷은 급격한 고저차는 물론이고 연이은 코너가 이어지는 테크니컬한 레이아웃으로 드라이버는 물론이고 자동차 스스로에게도 큰 부담을 주는 곳이다.
실제 해외의 정상급 GT 드라이버들도 대한민국이라는 모터스포츠 불모지에서 영암의 코리아인터내셔널 서킷과 함께 인제스피디움 수준의 우수하고 또 재미있는(다른 의미로 어려운) 서킷이 두 곳이나 존재한다는 점에 상당히 놀라는 눈치다.

그리고 그 곳을 최고 출력 256마력과 37.7kg.m의 토크를 내는 어코드 터보 스포츠가 달리는 것이다. 어코드 터보 스포츠는 2.0L VTEC 터보 엔진과 10단 자동 변속기를 조합하고, 이 출력을 전륜으로 전달한다. 네 바퀴의 타이어는 굿이어의 이글 투어링(235/40R 19) 사양의 밸런스 중심의 제품이 자리한다.

스포츠 세단을 탐하는 전륜 세단의 존재
마지막 코너를 빠져 나온 후 곧바로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짓이겼다. 기민하게 반응하는 2.0L VTEC 터보 엔진은 충분한 출력과 치솟는 RPM에 합을 이루는 비명을 질러대며 인제스피디움의 메인 스트레이트로 어코드 터보 스포츠를 내던졌다.
일반 시승에서 이미 그 가속력에 대해 만족감을 경험한 만큼 완만한 내리막 구간과 어우러지는 만큼 출력이나 가속력 부분에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아닌 만큼 변속 자체는 여유로운 편이지만 10개의 기어 비를 갖춘 변속기 또한 RPM의 움직임에 맞춰 제 몫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가속력 부분에서는 이후의 주행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오르막을 오르거나, 코너를 탈출한 이후 재가속을 할 때에도 출력의 정도나 페달 조작에 따른 반응 속도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언덕을 마주한 상태에서 자칫 크게 느껴질 수 있는 터보 랙도 확 드러나는 편이 아니라 주행의 번거로움은 없었다.
코너에 달려들고, 또 빠져 나오는 순간도 매력적이다.
후륜구동의 그 느낌을 압도할 수는 없겠지만 경쾌하고 민첩한 움직임이 드러나 혼다와 어코드라는 이름을 자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가벼운 조향과 그 조향에 맞춰 경쾌하게 움직임이는 모습을 느끼고 있으면 4.9m의 육박하는 전장이 한층 짧게 느껴진다.

물론 전륜구동인 만큼 코너링 시에 리어를 흘리거나 코너 안쪽을 파고드는 특유의 즐거움이 그리울 수 있겠지만 산뜻하게 코너를 움켜쥐고 달리는 그 느낌 또한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실제 연이은 연속 코너에서 어코드 터보 스포츠는 ‘기대 이상의 움직임’으로 코너를 능숙히 달리는 모습이었다.
특히 타이어가 스포츠 타이어가 아닌 점까지 고려한다면 그 퍼포먼스의 완성도는 더욱 높게 생각되었다.

명확히 드러나는 아쉬움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제동 부분에 있다.
솔직히 말해 절대적인 제동력 부분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바로 제동력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구동과 제동, 그리고 출력의 제동이 모두 전륜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어코드는 서킷을 달리면 달릴수록 브레이크에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인제스피디움처럼 내리막과 제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이면 그 부하는 더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코드 터보 스포츠는 생각보다 조금 더 일찍 브레이크의 한계를 드러냈고, 주행과 쿨링을 오가며 차량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비단 어코드 터보 스포츠의 문제가 아닌, 전륜구동 차량들의 공통된 문제라 크게 단점이라고 지적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언제든 서킷을 달릴 수 있는 존재
다시 말하지만 어코드는 전통적으로 잘 달리는 세단이지, 태생부터 스포츠 드라이빙에 의지를 갖고 있는 스포츠 세단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주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상에서 스포츠 드라이빙이 가능한 만큼 서킷에서도 제 몫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전륜구동과 패밀리 세단이라는 구조적인 특성을 고려하고, 이에 대한 합당한 관리와 드라이버 스스로의 컨트롤만 가능하다면 언제든 서킷에서 ‘드라이빙의 즐거움’과 ‘드라이빙의 가치’를 함께 경험하고 나눌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다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서킷 드라이빙을 즐기고자 하는 운전자라면 어코드 터보 스포츠의 네 발에 씌워져 있는 타이어를 조금 더 고성능 지향으로, 그리고 브레이크 부분의 투자 또한 함께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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