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의 골수에 뿌리 박힌 친검 DNA
20년간 공수처 반대로 검찰 두둔 일관
공수처 수용해 민심 받들어야 미래 있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논의는 20년 전에 시작됐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후 설치 법안들이 제출됐다. 하지만 “내 목을 치라”는 검찰의 반발,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진 보수 정당의 일관된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딱 한 번 예외가 있다. 2012년 12월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수처 법안을 제출했다. 이재오, 정의화, 심재철, 김성태, 김영우, 조해진, 이군현, 신성범, 고희선, 김정록, 이만우 의원이 법안에 서명하고 민주통합당 인재근, 전순옥 의원이 동참했다. 우경화 현상이 심해지는 한국당과 달리 당시 새누리당에는 그래도 개혁적, 합리적 보수가 살아있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이재오 한국당 상임고문이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수처를 반대하는 한국당을 비판했다. 그는 “공수처 수사대상인 고위공직자는 (권력을 쥔) 여당 사람이니 당연히 공수처법은 여당과 검찰 견제를 위해 야당이 발의해야 한다”면서 공수처를 반대하는 한국당을 향해 “그 사람들 속을 모르겠다”고 힐난했다. 오랜만에 들은 한국당 인사의 사이다 발언이다.
왜 한국당은 그토록 공수처를 극력 반대할까. 이 고문 발언 다음날인 3월 26일 한국당이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개정안에 힌트가 있다. 한국당안은 수사권은 경찰에, 기소권과 수사통제권은 검찰에 주되 검찰의 특별수사를 제한하고, 정보경찰을 분리해 국가정보청을 설치하는 것 등이 골자다. 하지만 세부 법조항을 들여다보면 진짜 의도가 드러난다.
검경의 대등한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면서 검찰이 언제, 어떤 식으로든 경찰에 ‘수사 요구’를 할 수 있게 했다. 만약 검찰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 경찰관에게는 징계ㆍ인사조치 요구는 물론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한나라당안은 사실상 검찰 수사범위는 그대로 둔 채 경찰 지휘ㆍ통제력만 강화한, 현 시스템보다 더 못한 조정안이라는 평가다. 더구나 한국당은 공수처는 절대 불가 입장이니 검찰로서는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한국당과 검찰의 관계는 뿌리 깊다. 노태우 정권 당시 검찰이 군(軍) 대체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보수 정당의 주요 인력 공급원이 됐다. 이후 검찰 등 법조계 출신들은 보수 정당의 요직을 꿰찼다. 이회창 전 총재(판사), 강재섭ㆍ박희태ㆍ안상수ㆍ홍준표(이상 검사)ㆍ황우여(판사) 전 대표와 현 황교안 대표(검사), 나경원 원내대표(판사)까지…. 검찰로 팔이 굽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친검(親檢) 성향 정당이라 해도 검찰 조직의 본성을 간과하는 것은 의아하다.
검찰은 권력에 머리를 숙이다가도 그 권력이 약해지면 새 권력을 위해 사정없이 칼을 휘두른다. 과거 검찰 흑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만 봐도 그렇다. 청와대가 과거처럼 검찰을 통제하고 있다면 검찰이 그토록 날카롭게 청와대를 겨냥했을까. 아마 ‘적당한’ 이유를 대며 ‘적당히’ 수사를 마무리한 뒤 청와대 수사는 훗날 ‘적당한’ 시기에 재개하려 했을지 모른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쥐고 사건을 주무른 검찰의 폐단을 한국당도 알 것이다. 저인망 수사, 별건 수사, 가지치기 수사, 압박 수사로 원성을 샀고, 늘 ‘법과 원칙’을 말하면서도 제 식구에는 솜방망이만 들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 처리가 딱 그 꼴 아닌가. 더구나 이 고문의 언급처럼 한국당이 ‘여당 시절이든 야당 시절이든 검찰 눈치를 보다가 뒤통수를 맞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검찰 입장만 두둔하니 한국당은 안목도 자존심도 없는건가.
검찰 권력은 법과 제도를 통해 확실히 견제해야 마땅하다. 공수처가 궁극의 제도는 아니어도 현재로선 최선이다. 일단 출범시킨 뒤 미비점은 개선해 가면 된다. 공수처를 받으면 한국당이 그토록 원하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러면 한국당은 공수처를 지지하는 민심도 얻고 실리도 챙기는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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