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넘겨라” 정부 요구에 소장자 반발해 소송… 법원은 1, 2심 모두 정부 ‘손’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가 법적 소유권자인 정부가 “실물을 넘겨라”하고 한 데 반발하며 제기한 ‘청구이의의 소’에서 1, 2심 법원이 잇따라 원고패소판결했다. 이에 따라 이번 소송이 확정될 경우 정부(문화재청)는 강제집행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훈민정음을 숨겨둔 소장자가 그 장소를 밝히지 않는 한 실제 집행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대구고법 민사2부(박연욱 부장판사)는 4일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56)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청구의의의 소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배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형사사건에서 무죄판결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이 없다는 의미일 뿐 공소사실 부존재가 증명됐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기각했다. 배씨가 훈민정음을 훔쳤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무죄판결을 받았더라도 소유권이 배씨에게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취지다.
문화재청은 법원 판결 결과를 근거로 상주본 강제집행을 할 수 있게 됐으나 그 소재지를 배씨만 알고 있어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배씨는 이번 소송과 별도로 상주본이 2012년 숨진 조용훈(당시 67ㆍ고서적상)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판결한 민사소송 당시 증인 3명을 위증 등의 혐의로 최근 검찰에 고소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2008년 7월 배씨가 집을 수리하던 중 처마 밑에서 발견했다며 세상에 공개됐다. 일부 페이지가 없었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했고, 국보 70호로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와 소리 등에 관한 연구자 주석이 있어 그 가치가 1조원에 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10월 조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배씨를 고발했고, 이어 2010년엔 소유권을 주장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5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상주본 소유권은 조씨에게 돌아갔지만 배씨는 실물을 넘기지 않았다. 이듬해 5월 조씨는 실물 없이 소유권 일체를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배씨는 문화재보호법위반으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훈민정음을 숨겨둔 곳으로 알려진 배씨 집에 2015년에는 불이 나 일부 소실됐다고 주장했으나 사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배씨는 또 지난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1,000억원을 받는다고 해도 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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