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0억원 투자 피레우스 항구 개발 계획
‘고고학적 가치’ 이유로 일부 계획에 제동
“지역 이해관계를 고고학 문제로 가장” 비판도
서방 주요 7개국(G7)의 일원 이탈리아까지 끌어들이며 유럽에서 탄탄대로를 걷던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수출 허브 역할을 기대하고 그리스 항구에 거액을 쏟아 부으려 했지만, 차일피일 심의 결과를 미루던 그리스 당국이 ‘고고학적 가치’를 이유로 개발 계획에 제동을 걸면서다. 중국은 악명 높은 그리스 관료주의를 넘어서야 할 처지에 놓였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리스 고고학 심의회는 이날 중국 국영 코스코(COSCO)해운이 피레우스 항구를 개발하려던 계획에 대해 일부 철회를 요구했다. 항구의 고고학적 유적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쇼핑몰ㆍ호텔 건설을 제한하고 이미 운영 중인 조선소도 폐쇄를 요청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아테네 시정부가 지난 2월 코스코해운의 개발 계획 중 절반 만을 승인하며 나머지는 고고학 심의회에 검토를 맡기면서 이뤄졌다. 코스코해운은 당초 6억7,200만달러(약 7,635억원)를 추가 투자해 △물류센터 △유람선 전용터미널 △호텔 4개 △쇼핑몰 등을 새롭게 지을 계획이었다.
피레우스 항구를 환적 거점으로 삼고자 했던 중국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다. 2052년까지 조선소 운영 허가를 받아놓은 건 물론이고, 처음 투자 계획을 발표했을 땐 아테네 시정부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는 2017년 유럽연합(EU)의 중국 인권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중국에 노골적인 구애의 손짓을 보내기도 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인줄 알았는데 뜬금 없이 고고학 유물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중국 측은 고고학 심의회의 요구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코스코해운 관계자는 WSJ에 “(개발 계획을) 수정한 뒤 몇 주 안에 다시 제출할 계획”이라며 “우리 계획은 오직 통째로 이행될 수 있을 뿐이지, 그리스가 일부만 선별할 수는 없다”고 했다. 고고학 심의회가 내린 결정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이미 설치된 설비에 대해서도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을 땐 고고학 업계에 의지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아테네 시 당국의 관료주의에 대해, 그리스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야당인 새민주당의 소피아 자카라키 대변인은 “고고학 심의회는 피레우스 항구의 절반이 유적지라는 비정상적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심의회의 이 같은 결정이 “민간투자에 대한 극좌정당(시리자)의 불편함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WSJ는 이번 결정이 악명 높은 그리스의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고고학 심의회는 그 중에서도 관료주의가 가장 심한 기관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물 훼손에 대한 우려로 해외투자를 몇 해씩 지연시키는 건 예사인데, 해외 투자자들은 “지역 이해관계에 의한 반대를 고고학적 이유로 가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 그리스 해운부 관료들은 “지방정부가 기존의 소매상들을 이유로 (코스코해운의) 쇼핑몰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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