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보험금 지급기준 살펴보라” 금감원, 소비자에 권고
보험사마다 문구 해석도 달라… 업계선 약관 수정 예상
‘경증 치매’에까지 고액의 보험금을 약속해 과열경쟁 경고를 받았던 국내 보험사들의 치매보험 상품이 이번엔 ‘모호한 약관’ 논란에 휩싸였다. 경증치매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조건을 규정한 약관 조항에 대해 금융당국이 “의사의 판정 외에 뇌영상검사 결과 등 추가 자료가 필요한지가 애매하다”며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보험사들은 당장 고민에 빠졌다. 추가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도, 필수가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든 부담이 커질 판이기 때문이다.
◇같은 문구, 다른 해석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보험사들이 경쟁적으로 판매한 ‘경증치매 보장 치매보험’의 약관을 현재 사후 점검 중이다.
치매는 통상 전문의가 ‘임상치매등급(CDR)’ 척도를 판단하는 것으로 진단이 가능하지만, 일부 보험사에서는 치매 진단시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법(MRI) 등 뇌영상검사 결과를 필수로 정하고 있어 민원과 분쟁 소지가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때문에 지난달 28일 금감원과 금융위원회는 “경증치매 진단 보험금 지급기준 등을 꼼꼼히 살펴보라”고 소비자들에게 권고하기도 했다.
문제가 된 약관 문구는 치매 진단 확정 조건을 “정신과 또는 신경정신과 전문의자격증을 가진 자에 의한 진단서에 기초해야 하며, 병력ㆍ신경학적 검진과 함께 CTㆍMRI, 뇌파검사, 뇌척수액 검사 등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이는 대부분의 치매보험상품 약관에 동일하게 포함돼 있다.
그런데 똑같은 문구를 두고 보험사마다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대체로 손해보험사들은 의사가 판단한 CDR척도 외에 뇌영상검사 결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반면, 생명보험사들은 해당 문구의 모호성 때문에 일단 CDR척도 판정만으로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석 통일해도 ‘부작용’ 우려
일단 보험업계에서도 “치매 진단을 받았음에도 영상검사에서 이상소견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점은 대체로 인정한다. 한국인의 치매 가운데 70%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형의 경우, 일반적인 MRI나 CT 등 영상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화재는 최근 내부 검토에서 “뇌영상검사상 이상소견 여부가 치매 보험금 지급의 필수 요건은 아니다”라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65세 이상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는 뇌의 노화 때문에 영상에서 이상 소견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의사 소견에만 의존할 경우 자동차보험에서 빈발하는 과잉 진료에서처럼 자칫 의사와 환자가 모의해 치매 진단을 남발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한 보험사 관계자는 “MRIㆍCT 외에 뇌파ㆍ뇌척수검사 등 다른 검사를 통해서라도 객관적인 근거를 확인할 필요는 있다”며 “문제가 된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경우 양전자단층촬영(PET)을 하면 영상검사상 소견이 나타나기에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뇌영상검사 결과를 필수 조건으로 두는 것 역시 부작용이 우려되는 건 마찬가지다. 보험사가 환자에게 엄격한 입증 요건을 요구하며 보험금 지급을 까다롭게 할 소지가 다분해서다.
금융당국이 약관의 모호성을 문제 삼은 만큼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약관 수정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모든 보험사의 약관이 비슷한 것을 보면 약관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성급하게 상품을 출시한 감이 있다”며 “현재 약관을 수정하든, 해석을 명확하게 하든 빠르게 결론을 내리길 바란다”며 당국에 공을 돌렸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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