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일 만에 골든벨, “아버지께 드리는 퇴임선물”

“반쯤은 찍었는데 골든벨이 울렸어요. 실력이 좋았는지, 운이 좋았는지…”
지난 3월, 630일의 침묵을 깨고 125대 골든벨의 주인공이 된 송명(16ㆍ대구 운암고 2년)군의 고백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를 라틴어로 쓰라는 마지막 문제를 듣고 ‘메멘토 모리’라는 답을 쓰고 나자 ‘이제 됐다’라는 안도감이 들더군요. ‘드디어 골든벨을 울렸다’는 성취감이 동시에 밀려왔어요.”
골든벨이 울리자 제일 먼저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송재문(62) 전 성주 용암중학교장의 지인들이었다. 그의 후배와 제자들이 재빨리 소식을 퍼 날랐다.
“선배님(선생님)의 늦둥이 아들이 골든벨 울렸다!”

송 전 교장은 47세에 송 군을 얻었다. 골든벨 촬영이 있기 한 달 전에 정년 퇴직했다. 송 군의 골든벨은 자연스레 아버지께 드리는 은퇴선물이 됐다. 송 전 교장은 “늦게 얻은 아들이 너무 좋은 퇴임선물을 줘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그동안 고등학교 등 6곳에서 근무하며 ‘우리 학교에도 골든벨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전국 2,400여개 고등학교 가운데 골든벨 출연의 기회를 얻는 곳은 6%에 불과합니다. 아들이 그런 골든벨을 울린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송 전 교장은 17년 동안 자녀를 기다렸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도 임신이 안 됐다. 기다림 끝에 기적처럼 얻은 아들이라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주길 바랐을 뿐 공부하라고 한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아들은 학교에서 늘 우등생이었다.
“그저 독서환경을 조성해주고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한 것이 전부였어요.”
교육자로서의 정도를 걸었다.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제자들을 교육할 때는 교육이론에 따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지도하면 됩니다. 하지만 제 자식을 교육할 때는 욕심과 감정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제자를 교육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죠. 늘 학력보다 인성이라고 생각하고 또 강조했지만 그래도 성적이 조금 더 좋았으면 하는 부모의 욕심이 불쑥불쑥 일었어요. 그걸 억제하느라 정말 애먹었죠, 하하.”
아쉬움도 있다. 그는 “학교 경영, 수업, 교육 등에 대해 생각한 게 적지 않았는데 학교장으로서 꿈을 펼칠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아쉬움이 크지만 미련은 아니다. 교사로서의 삶에 120% 만족한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제자입니다’라며 밝게 인사하는 제자를 만났을 때 마음에 감동이 밀려오죠. 제 인생을 인정받는 기분입니다.”
제자들 중에서도 “창수중학교 8ㆍ10ㆍ11회 졸업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전학 온 날부터 특별지도 받은 제자, 공납금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공고로 진학한 제자 등 어려운 시절에 갖가지 사연을 안고 학창 시절을 보낸 제자들이었다. 그는 “얼마 전 공고로 진학했던 제자가 교편을 잡고 있단 소식을 들었다”면서 “내가 어려운 고시에 합격한 것처럼 뿌듯하다”고 고백했다.
교편을 잡은 후 시간의 8할은 늘 학교와 제자들에게 쏟았다. 송 군의 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 행사 때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늘 다른 부모들이나 제자들과 기쁨을 나누고 격려하기에 바빴다. 송 전 교장은 “인생 2막, 이제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학교가 우선이어서 가정에 충실치 못했습니다. 휴식과 재충전으로 가정에 충실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아들처럼 저도 인생 2막의 골든벨을 힘차게 울리겠습니다.”
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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