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 출범
4개월간 현장조사 후 개선책 마련
“컨베이어벨트 사이를 지나는 길이 그렇게 무섭지 않았는데 김용균씨 사고 이후 다니기 두려워졌습니다.”
지난해 12월 11일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소속 계약직 노동자 김용균(당시 24세)씨가 숨진 지 넉 달이 채 안된 3일, 김씨 사망 현장으로 조사위원들을 안내하던 김씨 동료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김씨가 홀로 점검하던 화력발전소 설비들은 무심한 듯 돌아가고 있었지만, 현장을 채운 슬픔과 공포는 여전했다.
김씨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는 이날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본부 현장조사를 시작으로 본격 활동에 돌입했다. 조사위원회는 삼성전자 백혈병 조정위원회를 이끌었던 노동법 전문가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 권영국 변호사, 안전보건공단 배계완 기술이사 등 16명의 노동ㆍ인권ㆍ안전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조사위원회는 4개월간 활동하면서 석탄화력발전소 내 사망사고 발생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내놓게 된다.
김씨는 지난해 9월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비정규직으로 입사, 컨베이어벨트 설비 운전 및 점검을 담당했다. 지난해 12월 11일 새벽, 홀로 4㎞에 이르는 석탄운송설비를 걸어서 점검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거센 비난이 일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서부발전에서 발생한 58건의 산업재해 중 56건이 협력회사에서 발생했으며, 8건의 사망사고 피해자는 모두 하청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김씨가 참변을 당한 9ㆍ10호기의 컨베이어벨트는 멈춘 상태다. 하지만 참변 당시 가득 쌓여있던 잔탄은 그대로였다. 빠른 속도로 석탄을 옮기는 컨베이어벨트는 곳곳에 잔탄을 흘리는데, 특히 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컨베이어벨트 방향이 바뀌는 지점이라 유독 잔탄이 많았다. 손전등을 비춰도 어두컴컴한 곳인데,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면 김씨는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잔탄으로 인한 기계 이상을 살폈다.
김씨 사망 이후 작업 환경이 바뀌긴 했다. 서부발전은 ‘2인1조’ 근무 원칙을 재확인하고 안전발판이나 계단을 만들어 위험한 환경을 일부 개선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이날 조사위원회 현장 조사에 동행한 김씨 동료 중 한 명은 “언제든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심리적 충격이 여전한 셈이다. 다음은 소통 부재다. 이날 현장 조사에서는 직원들 의견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안전발판 등을 만드는 바람에 실제 작업은 더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잔탄 제거를 위한 진공 청소 설비도 서부발전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 자랑했지만 정작 직원들은 “불편해서 잘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석탄운송설비 이외 다른 위험 지역의 ‘2인1조’ 근무도 연구용역이 나와봐야 결정된다.
김지형 조사위원장은 “노동 안전이 곧 인간 존중”이라며 “김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태안=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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