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10세대 시빅이 국내 출시를 앞두고 홍보 담당자에게 불만 섞인 소리를 했었다. 그에게 “HR-V도 그렇고, 시빅도 그렇고, 왜 소비자들이 원하는 파워트레인을 가져오지 않느냐?”라며 핀잔 섞인 물음을 했던 것이다. 그에게 돌아온 답은 형식적이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터보 사양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며 나름대로의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10세대 시빅의 성적은 처참했다. 과거 수입차 대중화를 이끌던 그 8세대 시빅의 존재는 어디로 가로, ‘시빅’이라는 존재 자체가 시장에서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시빅 터보’의 등장은 물 건너 간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2019년 3월, 2019 서울 모터쇼가 막을 올렸고 혼다는 무대 중심에 시빅 스포츠를 배치했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던, 터보 엔진을 품은 혼다 시빅이 국내 시장에 데뷔하게 된 것이다.
신경 쓴 티를 내는 시빅 스포츠
2019 서울 모터쇼 헤드라이너를 담당한 시빅 스포츠는 첫 인상부터 ‘신경을 쓴 티’를 숨김 없이 드러냈다. 시빅 자체가 제법 스포티한 감성을 드러내는 존재인 만큼 ‘시빅 스포츠’의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손질하고 개량한 것이 티가 났다.
실제 차량의 전면부는 솔리드 윙 디자인의 블랙 컬러 프론트 그릴과 함께 범퍼 하단에도 블랙 컬러의 사이드 가니시와 스키드 가니시 등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혼다 시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타입 R 만큼은 아니더라도, 혼다 시빅 Si를 떠올리게 하는 외형을 갖게 되었다.
이와 함께 측면과 후면에서도 소소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네 바퀴에는 18인치 블랙 톤 알로이 휠을 적용해 스포츠 모델로서의 존재감을 강조했으며 후면에는 블랙 트렁크 스포일러와 듀얼 타입의 머플러 팁을 적용해 더욱 고급스럽고 또 스포티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혹자는 “왜 ‘타입 R’을 가져오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에게 수 년 전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X가 어떤 패키지를 갖추고 얼마나 공격적인 가격으로 국내에 데뷔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 복기하길 권한다.
실내 공간은 그 변화가 크지 않다. 일반적인 시빅들과 같이 차분하게 다듬어진 모노톤의 대시보드와 드라이빙의 집중도를 높이는 콕핏 구성, 그리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센터페시아 및 센터 터널을 통해 차량의 포지셔닝과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히 드러낸다.
시동을 걸면 기존 시빅과 시빅 스포츠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의 디스플레이 패널의 테마 컬러가 붉은색으로 완전히 변하며 역동성을 드러낸다. 이외에도 이외에도 알루미늄 소재의 스포츠 페달 세트와 스포티한 감성을 살리는 패들시프트 또한 더해졌다.
참고로 시빅의 매력 중 하나는 패키징의 효율성에 있을 것이다. 실제 검은색 스포일러가 달린 트렁크 게이트를 들어 올리면 넒직한 적재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2열 공간 또한 충분히 여유롭고 만족스러우니 그 가치는 분명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
1.5L 터보 엔진을 품다
혼다 시빅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어스 드림 테크놀로지(Earth Dreams Technology)’를 적용한 1.5L VTEC 터보 엔진을 탑재한 것이다. 물론 VTEC 터보 엔진은 앞서 데뷔한 CR-V 터보 및 어코드 터보 등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긴 했으나, 최적의 매치업은 역시 시빅이라 생각된다.
날렵하게 다듬은 보닛 아래 자리한 1.5L VTEC 터보 엔진은 최고 177마력과 함께 22.4kg.m의 토크를 과시한다. 여기에 최근 혼다가 광범위하게 적용 중인 CVT와 합을 이루며 전륜으로 출력을 전한다. 이를 통해 혼다 시빅 스포츠는 복합 기준 13.8km/L의 효율성을 확보했다.(도심 12.5km/L 고속 15.8km/L)
더욱 경쾌하게, 그리고 더욱 세련된 느낌으로 달리다
시빅 스포츠와의 주행을 시작하기 위해 시트에 몸을 맡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편안함에 초점을 맞췄지만 낮은 시트 포지션과 몸을 감싸는 듯한 시트의 설계, 그리고 손에 착 감기는 스티어링 휠의 조합을 통해 드라이빙에 대한 기대감을 단 번에 끌어 올리는 모습이다.
시야 또한 만족스럽다. 전방과 측방, 그리고 후방을 가리지 않고 드라이빙을 위한 만족감 높은 시야를 제공하며, 스티어링 휠 너머로 보이는 계기판은 RPM과 속도 부분을 그 어떤 차량보다 직접적으로 연출하며 ‘드라이빙에 대한 집중도’를 대폭 끌어 올렸다.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면 아이들링 상태부터 약간의 진동이 느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진동이 아주 큰 편도 아니고 또 시승 차량의 주행 거리가 1,000km를 채우지 못한 만큼, 차량의 문제, 혹은 스포츠 모델에 대한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였다.
기어 레버를 옮기고 본격적인 주행을 시작하면 1.5L VTEC 터보 엔진의 성과가 드러난다. 사실 어코드 터보나 CR-V 터보 등 같은 엔진을 탑재한 차량들이 실질적인 주행에서 선보인 움직임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 체격도 작고, 몸무게도 가벼운 시빅 스포츠에서는 그 매력이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실제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으면 가속력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충분히 시원시원한 가속력을 경험할 수 있다. 가속력과 함께 실내 공간으로 충분한 엔진 및 배기 사운드가 유입되며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그 존재감이 충분히 느껴졌다.
다만 1.5L VTEC 터보 엔진에 합을 이루는 변속기가 CVT인 만큼 RPM이 치솟고, 변속하는 과정에서의 만족감이나 매력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매력은 매력이고, 실질적인 드라이빙에서는 CVT의 존재감이 빛난다. 스포츠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CVT를 택한 덕에 시빅 스포츠는 일상적인 주행 상황부터 스포티한 주행까지 언제나 매끄럽고 꾸준한 출력 전개를 펼치며 그 매력을 어필했다.
다만 과거의 혼다, 그러니까 약간은 경박스럽지만 재미를 앞세운 드라이빙은 이번 10세대 시빅부터 조금 억누른 모습이다.
실제 스티어링 휠의 반응이나 스티어링흴에 대한 차량의 반응 등은 여전히 경쾌하고 민첩한 편이지만, 하체가 이전보다 확실히 포용력을 높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정속 주행은 물론 대다수의 주행 상황에서도 시빅 스포츠는 실내의 탑승자에게 되도록 불편함을 줄이려는 모습을 내비치는 모습이었다.
물론 주행 페이스를 대대적으로 끌어 올리고 스티어링 휠을 더욱 빠르게, 그리고 더욱 적극적인 패들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면 예전의 노골적인 시빅의 스포츠 아이덴티티까지는 아니더라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성으로 다듬어진 현재의 시빅 스포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로 주행 페이스를 높였을 떄 제동력 또한 함께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역시 ‘시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더욱 안전한 드라이빙을 즐기다
한편 이번 시승을 하면서 간간히 혼다 센싱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전방 추돌 경고, 차선 이탈 경고 등 다양한 기능 덕에 주행 페이스를 높여 달리는 그 와중에서도 더욱 안전한 드라이빙을 경험할 수 있었고, 또 레인-워치 카메라 등 또한 고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 만족감을 과시했다.
좋은점: 더욱 강렬한 드라이빙과 매력적인 혼다 센싱
아쉬운점: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3,290만원의 가격
가치와 가격의 경계에 있는 존재
문제는 가격이다. 10세대 시빅의 등장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시빅 스포츠에 달려 있는 3,290만원의 가격표는 참으로 미묘하다. 드라이빙이나 차량의 패키징 부분에서는 분명 합당한 가격표라 할 수 있지만, 사실 일본 브랜드들의 중형 세단들과 가격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그렇기에 혼다 코리아는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 혹은 과감한 선택으로 시빅 스포츠의 가치를 더욱 높여야 할 것 같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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