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오후 7시쯤 지하철 3호선 대곡역. 상행선 승강장에 들어선 전동차의 외관은 충격적이었다. 10칸 모두 외장이 심하게 갈라지거나 들떠 있어 ‘세계적 수준’이라는 서울 지하철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서울교통공사 소속인 이 전동차의 편성 번호는 ‘346’. 1990년에 도입돼 올해로 30년째 운행 중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께 1호선 용산역 3번 승강장에 정차한 동인천 급행 ‘186’ 편성 전동차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도색이 벗겨져 부식된 철판이 드러났고 울퉁불퉁한 표면엔 녹물 얼룩까지 선명했다. 뒤 이어 온 ‘174’ 편성은 출입문 주변 외장이 날카롭게 찢겨 승ㆍ하차 시 승객 부상 위험까지 있었다. 현재 용산~동인천 구간에 급행열차로 투입되는 편성 번호 ‘1x00호’대 코레일 전동차 12대 모두 1994년부터 1997년 사이 도입된 노후 차량이다.
이처럼 전동차 외장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경우 철재 프레임이 부식되면서 강도가 약해지고 심할 경우 뒤틀릴 수도 있다고 철도 전문가와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외관이 안전에 직접적인 문제를 초래하지는 않는다”라며 “시민들이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정비 일정에 맞춰 주기적으로 외장 도색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공사에 따르면 전동차 외장 도색은 보통 2년 주기로 실시하지만 전동차 노후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해 보인다.
서울 지하철의 전동차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3월 기준 1~8호선 전동차 총 3,551칸 중 1,929칸, 비율로는 54%가 이미 20년을 넘겼고 평균 사용 연수도 19.2년에 달한다. 지난해 2호선에 도입된 새 전동차 200칸을 반영한 연수다.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전동차 1,914칸을 순차적으로 교체할 계획인데, 이대로 진행되더라도 마지막 단계인 5, 7, 8호선 834칸의 교체가 완료될 때까지 일부 노후 전동차는 최소 5년을 더 버텨야 한다. 게다가 전체의 78%가 20년 이상 된 1호선은 아예 교체 대상에서 제외됐고 다른 전동차의 노후화도 진행 중임을 감안하면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노후한 부품, 교체 한 번 없이 버틸 수 있을까
갈라지고 찢긴 외장도 문제지만 안전과 직결된 부품의 노후화는 훨씬 더 치명적이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최근 10년간 발생한 수도권 지하철 탈선 사고에 대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작성한 사고조사결과보고서를 전수 검토한 결과 총 14건 중 5건이 노후 부품으로 인한 사고였다. 특히 2010년 과천선 범계~금정역 사이와 2011년 분당선 죽전역, 2015년 경인선 인천역, 2016년 1호선 노량진역에서 발생한 탈선 사고의 경우 곡선 구간에서 전동차 하중을 바퀴에 고르게 분산해주는 1차 스프링과 공기 스프링이 노후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하면서 한쪽 바퀴가 들려 선로를 이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전동차 모두 사고 당시 연수가 15년을 넘었고, 원인이 된 부품은 사고 전까지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었다. 사고조사위가 정지 윤중비(열차 하중이 바퀴에 분산되는 비율) 측정 설비 도입을 권고했지만 서울교통공사는 공기스프링에 대한 탄성 시험만으로 대체하고 있고 코레일은 “올해 안에 장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김철수 한국교통대 철도차량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전동차는 부품마다 내구 수명이 다르기 때문에 각 구성품의 순 주행거리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화 해 정비 보수 주기를 설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체 뼈대 곳곳에도 균열
바퀴를 장착하고 객차를 지탱하는 전동차의 뼈대 ‘대차틀’에서도 노후로 인한 균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에 따르면 4호선 전동차의 경우 2005년 1건에 불과했던 대차틀 균열이 꾸준히 늘어 지난해 9건이나 발견됐다. 현재 4호선은 전동차 470칸 전체가 사용연수 20년을 넘겼고 26년 이상도 27%에 달한다. 전동차 교체 완료 시기는 2023년이다.
대차틀과 객차를 연결하는 ‘센터피봇’ 역시 균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위다. 노조 관계자는 “노후 전동차가 장거리를 장시간 운행하면서 피로가 누적될 경우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고를 예방하려면 정비를 더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현재 정비 수준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운영 환경이나 부품 품질에 따라 전동차 검사를 진행하고 있고, 대차틀 균열은 철저히 관리 보수하고 있다”라면서 “이쪽 부위의 균열이 갑작스러운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확신했다.
◇믿지 못할 안전진단, 기관사도 기피하는 노후 전동차
현행 철도안전법에 따르면 전동차 기대수명은 25~30년이지만 최대 연장 사용 기간은 규정하지 않아 정밀안전진단만 통과하면 기대 수명을 넘겨도 계속 운행할 수 있다. 문제는 정밀안전진단을 무작정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에 따르면 ‘454’ 편성 전동차의 경우 2017년 7월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지 3개월 만에 대차틀 균열이 생겼고, ‘462’편성은 5개월 만에 대차틀 전체를 교체할 정도로 큰 결함이 발견됐다. 때문에 노후 전동차는 기관사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다. 서울교통공사 소속 한 기관사는 “전동차에 문제가 생기면 그에 대처할 책임이 1차적으로 기관사에 있기 때문에 사고나 고장, 장애 이력이 있는 낡은 전동차를 운전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라고 털어놨다. 신경이라도 곤두세울 수 있는 기관사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내 앞에 선 전동차가 몇 살인지, 부품이 얼마나 낡았는지 알지 못한 채 오늘도 노후 전동차에 몸을 싣고 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그래픽=강준구 기자 wldms461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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