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대 도시 시카고가 '커밍아웃한 흑인 여성'을 차기 시장으로 선출했다. 미국 대도시에서 흑인 여성, 그것도 성소수자 시장이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선거사에 새로운 기록을 쓴 셈이다.
2일(현지시간) 열린 시카고 시장 선거 결선 투표에서 '정계 새 얼굴' 로리 라이트풋(56·민주) 전 연방검사가 '거물급 정치인' 토니 프렉윈클(72·민주·쿡 카운티 의장)을 압도적 차로 누르고 최종 승리했다. 개표가 66% 진행된 가운데 득표율이 75% 대 25%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자 AP통신은 라이트풋 승리를 단언했다.
시카고 56대 시장 당선이 확실시 된 라이트풋은 "지금 이 순간을 모멘텀 삼아 시카고에 밝은 새 날을 열어가자"고 소감을 밝혔다.
라이트풋은 이번 선거에서 급부상한 시카고 정계의 새 얼굴로, 경찰 감독·감찰 기관의 수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59·민주) 현 시장이 3선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 이매뉴얼 시장을 겨냥해 시카고 시장 출사표를 던졌다.
연방 검찰청 일리노이 북부지원 검사, 대형 로펌 메이어 브라운 소속 변호사 등으로 활동했으며, 시카고 시의 총체적 부패를 드러낸 흑인 소년 16발 총격 사살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경찰위원회 의장으로 경찰 개혁과 정치권 부패 일소를 촉구하며 인지도를 높이고 개혁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를 모았다.
3선을 준비 중이던 이매뉴얼 시장이 작년 9월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시카고 시장 선거에는 무려 21명의 후보가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 자격 검증을 거친 14명의 후보가 지난 2월 26일 치른 통합 경선에서 라이트풋과 프렉윈클은 각각 17.54%·16.04%로 1·2위에 올라 결선 투표로 최종 당선자를 가렸다. 빌 클린턴 행정부 상무장관, JP모건 체이스 중서부 회장, 오바마 행정부 2대 백악관 비서실장 등을 지낸 정치명문가 출신 빌 데일리(70)도 경선에 참가했으나 두 흑인 여성에게 밀리며 3위에 그쳤다.
라이트풋은 결선 캠페인 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프렉윈클을 앞섰고, 양대 지역신문과 경선 경쟁자들로부터 잇딴 공개지지를 끌어내며 줄곧 선두를 지켰다. 대세가 라이트풋으로 기울자 프렉윈클은 선거를 목전에 두고 TV 광고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지만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시카고에서 흔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흑인' '여성' '동성애자' 수식어를 한 번에 단, 정치 무경험자 시장이 탄생한 데 대해 현지 언론은 '정치 머신'(Political Machine)으로 일컬어지는 부패한 시카고 정치에 신물 난 유권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시카고 시는 1979년 첫 여성 시장 제인 번(81)에 이어 1983년 첫 흑인 시장 해롤드 워싱턴(1922~1987)을 선출했고, 전국적으로는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상원의원 캐롤 모슬리-브론(1992)과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2008)를 배출했다.
라이트풋은 오하이오 주 매실런에서 태어나 미시간대학(앤아버)과 시카고대학 법대를 졸업했고, 동성배우자 에이미 에술먼과의 사이에 딸(10) 1명을 뒀다.
그는 전국적으로 악명 높은 시카고 시의 총기폭력·치안 문제와 막대한 규모의 공무원 연금 적자·만성적 재정난 해결을 숙제로 떠안았다. 사법 당국에 대한 불신 해소, 부패 정치인·부패 시스템 척결, 도시의 균형적 발전, 인구 이탈 등에 대한 주민 요구에도 부응해야 한다.
한편, 라이트풋과 프렉윈클은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77) 목사의 제안에 따라, 결선 투표 다음날인 3일 오전 공동 회견을 열고 승패에 상관없이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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