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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스토리] 무과실 사고도 ‘사람 죽인 의사’ 낙인 “분만 더는 못해”

입력
2019.04.08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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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위기의 산부인과 의사들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산부인과 전문의 A(42)씨는 유흥업소가 즐비한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A씨는 서울 양천구에서 분만 잘하는 여의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랬던 그가 강남 유흥가 뒷골목 성형외과에서 유흥업소 종업원을 주 고객으로 미용시술을 하게 된 것은 의료사고 때문이었다.

2014년 4월 그는 7년간 근무했던 산부인과를 그만뒀다. 그해 1월 자연분만 도중 원인이 불확실한 자궁출혈이 발생해 태아가 사망했고, 자궁을 적출한 산모의 계속된 항의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고도 아니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라고 결정해 산모에게 보상금도 지급됐지만 소용이 없었다. 산모가 매일 병원에 진을 치면서“아기와 자궁을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울고불고하는 통에 정상적인 병원 운용이 불가능했다. 그는 “10년 넘게 밤낮 없이 분만을 했지만 ‘아기 죽인 의사’로 낙인이 찍혔다. 그 사건 이후로 분만을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강북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는 B(49)씨는 지난해 분만실 운영을 포기하고 부인과 외래만 보고 있다. 요즘에는 성형외과 ‘술기’(수술 및 시술에 필요한 기술)를 배우기 위해 열심히 학회행사를 챙기고 있다. 그는 “산부인과 학회에 가면 질(膣)성형ㆍ피부 미용과 관련한 술기를 배울 수 있고 정보를 공유한다”며 “심지어 의대 후배 중 성형외과 전문의에게 별도로 과외를 받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아기를 받아 줄 산과(obstetrics)의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의사들의 분만기피 현상이 돌이킬 수 없게 됐다”며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산부인과 명칭을 모두 부인과(gynecology)로 변경할 판”이라고 말한다.

출산을 담당하고 있는 산(産)과가 몰락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저출산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4년 42만4,938건이었던 분만건수는 2017년 35만2,269건으로 7만2,714건 감소했다. 3년 사이에 17%나 감소한 셈이다. 2014년 647개였던 분만의료기관도 2017년 557개로 14%나 줄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오로지 저출산 때문에 분만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수가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이 분만을 포기하게 한다는 것이다.

각 의료기관별 분만수가를 취합한 결과, 초산의 경우 자연분만 수가는 55만~60만원대, 제왕절개는 38만~41만원대였다. 생명과 관계없는 라식수술(비급여)비용이 250만~300만원대에 형성된 점과 비교하면 낮은 건 사실이다. 지금 수가체계로는 분만하는 내내 24시간 투입되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 인건비는 물론 수술대, 재료비 등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산부인과 의사들의 주장이다. 경기 수원에서 20년간 분만실을 운영하다가 지난 2017년 분만을 포기한 산부인과의원 원장 C(48)씨는 “분만실 운영을 위해서는 최소 한 달에 10건 정도 분만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난 1년간 평균 한 달에 10건은커녕 5건도 채우지 못했다”며 “산모도 오지 않고, 온다 해도 분만하다 의료사고가 나면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날릴 수 있으니 솔직히 분만을 하지 않는 것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저출산, 낮은 수가, 의료사고 위험 등 3중고 때문에 분만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산부인과 의사들은 저출산, 낮은 수가, 의료사고 위험 등 3중고 때문에 분만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기에 더해 분만과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의료사고까지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분만을 기피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모성사망비율은 출생아 10만명당 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2명)보다 낮은 편이지만, 의료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김탁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의료사고 피해자들은 무조건적으로 요구만 하면 보상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한 편이라, 의료사고가 나면 의사들이 사면초가에 빠진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기 남양주시의 한 산부인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E씨는 “지난해 가을 동료 의사가 분만과정에서 산모가 양수색전증에 걸려 사망했다”며 “중재원에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라고 결정했지만 사망한 산모 남편과 가족들이 6개월이 넘게 병원을 찾아와 ‘사람 죽인 의사가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결국 그 의사가 병원을 그만뒀다”고 전했다. 양수색전증은 분만과정에서 양수가 산모의 혈관으로 들어가 호흡곤란, 경련 등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최악의 경우 산모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지만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의료분쟁이 빈번하다.

분만과정에서 산모ㆍ태아 등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 사망했을 때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최대 3,000만원을 보상해주고 있는데 국가가 70%, 의료기관이 30%를 분담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처럼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병원이 일부 보상을 하다 보니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광주광역시에서 30년 넘게 산부인과의원을 하고 있는 D(53)씨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산부인과학회 모임에 참석했다가 후배들에게 ‘질타’를 당했다. D씨는 “한 후배가 술에 취해 ‘누가 그런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계속 분만하면 결국 교도소 간다’고 했을 때 해줄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저출산, 낮은 수가, 의료사고 위험성 등 ‘3중고’를 견디지 못해 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사들이 관심을 보이는 곳은 경제개발이 한창인 베트남이다. 베트남에서 의료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노모(48)씨는 “우리와 달리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진료과가 산부인과”라며 “수도인 하노이에서는 산모들이 병원 밖에서 줄을 서 대기하는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말에 하노이를 찾았을 때 한국의사 60여명이 베트남 의사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시험을 보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고 전했다.

오창현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올 4월까지 현재 7:3으로 돼 있는 의료분쟁 보상비 분담비율을 재검토할 것을 권고해, 분담비율 조정과 함께 보상금 인상도 고려하고 있다”며 “병원과 의료사고 피해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의 불만이 타당하건 아니건, 현실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아기 낳을 곳이 사라지는 악몽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셈이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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