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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도 인정한 대구의 죽궁, 대구는 활의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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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도 인정한 대구의 죽궁, 대구는 활의 도시입니다!”

입력
2019.04.03 21:46
수정
2019.04.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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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죽궁 궁장을 칭찬합니다

김병연(55ㆍ달구벌 죽궁)씨가 역사 속에 묻힌 대구 죽궁을 재현해서 대구가 활의 도시임을 천명하며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강은주 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김병연(55ㆍ달구벌 죽궁)씨가 역사 속에 묻힌 대구 죽궁을 재현해서 대구가 활의 도시임을 천명하며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강은주 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아빠, 활 만들어 주세요.”

10여년 전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던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졸랐다. 아버지는 문득 자신도 아버지에게 똑같은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당신은 우리나라 최초 선반기술자였다. 신생 공업사 공장장 시절 줄톱, 나사, 볼트 등 기계 제작을 자동화시킨 장본인이었고, 아들의 부탁에 활도 곧잘 만들었다. 아버지에게 활 만드는 법을 배워서 촛불에 대나무를 휘며 활을 만들었다. 손재주가 좋아 동네 친구들에게 100원에 팔기도 했다. 2014년 세계 최초로 '나전 죽궁'을 개발한 김병연(55ㆍ달구벌 죽궁)씨의 이야기다. 그는 “아들의 질문을 계기로 까맣게 잊고 있던 활에 대한 어린시절의 기억과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고백했다.

김 씨가 직접 만든 틀을 이용해 활의 정확도를 재는 모습. 강은주 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김 씨가 직접 만든 틀을 이용해 활의 정확도를 재는 모습. 강은주 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화살이 멀리 날아가려면? 독학으로 알아낸 사거리의 비밀

오랜만에 활을 만들어서 쏘아봤더니 코앞에 톡, 떨어졌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만들어 준 활은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날아갔었다. 사거리의 비밀이 궁금해졌다. 활 잘 만드는 분을 수소문한 끝에 명궁 주해응 선생을 찾았다. 선생은 보자기를 풀어 40년 전 물려받은 활을 보여주었다. 이런저런 조언 끝에 숙제 하나를 내주었다.

“향후 각궁은 소힘줄이 부족해서 나중엔 만들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활을 쏘는 사람이다. 자네는 소질이 있으니 죽궁을 복원해 보게.”

죽궁의 주재료는 대나무다. 좋은 요리를 만들려면 먼저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 대나무 성질을 알기 위해 무작정 담양 죽검 명인을 찾아갔다. “집안 비법이니 알려 줄 수 없다. 스스로 깨우쳐라”는 답을 받았다.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만들고 또 만들었다. 시행착오의 반복이었다.

바람벽에 글귀 하나를 크게 써붙였다. ‘활대와 사거리’. 모양이 같아도 활대에 따라 사거리가 달라진다는 걸 알아냈던 것이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군용 단조물 불량을 가려낼 때는 망치로 두드려 소리를 들어보면 된다”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 이거다!”

대나무를 계속 두드려봤더니 좋은 대나무는 소리부터 달랐다. 지름 10cm 굵기에 맑은소리가 나는 대나무가 최상의 재료라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좋은 대나무는 비탈길, 자갈길 등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것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힘들게 자란 대나무는 마디가 촘촘하고 재질이 단단한 데도 점조직이 치밀합니다.”

스스로 알아낸 위대한 발견이었다. 탄성 역시 사거리에 중요한 요소다. 탄성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 건조와 불질은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나무 첫 마디가 줌통부분에서 몇 센티에 자리 잡아야 하는지 등을 연구했다. 모든 것이 수작업이었다.

“수없이 만들었습니다. 오른팔 인대가 3번이나 나갔지요. 붕대 감고 또 만들었죠.”

안 될 때마다 늘 고심하고 개발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버지께서는 늘 “기술자는 ‘단도리’를 잘해야 한다”고 일렀다.

‘그래, 전통방식에만 의존하지 말고 일정한 틀을 만들자.’

1시간 과정을 10분 만에 해냈다. 수월성과 정확성에 탄력이 붙었다. 신바람이 나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2년 연구 끝에 사거리 165m의 우리나라 전통 죽궁을 복원했다.

김 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인 부분도 파고들었다. 주해응 선생을 찾아갔을 때 무심히 “죽궁을 대구에서 만들었다 카더라”라는 말을 툭, 던졌다. 그 기억이 내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실증적 기록물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를 찾기 위해 봉산문화거리 고서책방을 뒤졌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였다. 포기하려던 순간 한국고전종합 DB를 알게 되었고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 14권(효종 6년 1655년 신유 2월 6일)에 대구 죽궁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대구 부사 이정을 통정계(通政階)로 특별히 승진시켰다. 본도의 병마절도사(兵使)가 본 읍의 군기(軍器)를 검열하고서 이정이 새로 만든 죽궁(竹弓)의 제도를 계문하니, 특별히 칭찬하는 명이 있었다.’

"전율이 일었습니다. 찾았다는 기쁨보다 대구 부사 이정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대구가 활의 도시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360년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죄책감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김 씨가 2016년 주한대사관 가족 초청 향사례 전통 활쏘기에서 1등을 한 이란 학생과 사진을 찍고 있다. 달구벌 죽궁 제공
김 씨가 2016년 주한대사관 가족 초청 향사례 전통 활쏘기에서 1등을 한 이란 학생과 사진을 찍고 있다. 달구벌 죽궁 제공

조선시대 활쏘기대회를 인성교육 프로그램으로 부활

“대구 활 역사의 정체성을 확립하자”고 다짐했다. 더불어 죽궁을 대구 관광 상품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일본인이 갖고 싶어 하는 한국 관광 상품 중 첫 번째가 나전칠기라는 통계 자료를 보고 직접 나전칠기를 배웠다. 그 결과 2014년 세계 최초로 '나전 죽궁'을 개발했다.

2016년 ‘대구경북관광의 해’를 맞아 한국관광공사 대구경북협력단으로부터 “죽궁을 대구관광 특화상품으로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죽궁에 자개를 입히는 작업을 했다.

“실패한다. 휘어지면 (자개가) 다 떨어질 거다.”

주위에서 모두 안 된다고 했다. 냉동실과 찜질방을 수차례 오가며 유연성 과정을 거쳤다. 완성 후 테스트 과정에서 도저히 시위를 당길 수가 없었다. 5살 때부터 활을 배운 딸아이가 시위를 당겼다. 성공이었다. 그해 KBS 월드방송 ‘한국의 창조적인 장인’에 선정이 되었다. 활에 나전칠기를 입힌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실용과 예술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예술품은 미국, 남미, 아프리카, 러시아 등 전 세계 11개 언어로 소개되었다. 대구시는 물론이고 대구 자매도시인 일본 히로시마에도 대구 대표 상품으로 기증되었다. 경주 금관 옆에 나란히 전시되는 영광도 누렸다.

국궁 청소년 인성개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교육현장에 접목했다. 활은 참을성과 인내력, 집중력을 키운다. 조선시대 성균관과 향교 등에서 행해졌던 활쏘기대회를 복원했다. 향사례였다. 성균관에서 대사례란 이름으로 임금이 참관하는 가운데 진행되었고 지역에서는 향교가 주관했다. 향교에서 향촌교화를 목적으로 효제충신과 예의 덕목에 부합하는 사람을 불러서 술과 음식을 베풀고, 편을 갈라 활쏘기 시합을 했다. 김 씨는 향사례를 현대에 맞게 축제로 재현하고 싶었다. 예를 품어 활을 쏘는 전통의식을 계승하여 아리랑사법을 개발했다. 5분 20초 동안 대금의 음률에 따라 행해진다. 정숙하고 정제된 동양의 신비로운 의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대구청소년 국궁 시범단이 편전(애깃살)을 시연하는 모습. 달구벌 죽궁 제공
대구청소년 국궁 시범단이 편전(애깃살)을 시연하는 모습. 달구벌 죽궁 제공

주한 대사관, 외교관과 가족 100여 명을 대상으로 전통 활쏘기 시연인 향사례와 아리랑사법을 진행했다. 다음날 모 일간지 1면에 “아리랑 사법”에 대한 호평의 기사가 실렸다. 대구에서 쏘아 올린 활이 과녁을 향해 힘차게 날아간 거였다.

“2020년 대구경북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대구가 활의 도시였고 5천년을 이어온 활의 정신을 꽃피운 곳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활을 통해 인성과 호연지기를 배우고 전통을 계승하고 정체성을 이어가도록 후진을 양성하겠습니다.”

강은주 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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