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스트롱맨 리더십이 국가 안팎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열린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25년 만에 수도 앙카라 시장 자리를 야당에 내주고 말았다. 또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S-400’ 도입을 밀어붙이자, 미 국방부가 ‘F-35’ 부품 인도 중단을 밝히면서 미국ㆍ터키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1일 현재 매체에 공개된 개표 결과에 따르면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은 전체 득표에서 앞섰으나, 민심 지표의 양대 축인 앙카라와 경제ㆍ문화 중심지 이스탄불 지역에서는 모두 패배했다. 언론 탄압과 개헌 등으로 권력을 강화해 온 에르도안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에 대해 “정치적 대이변”, 워싱턴포스트(WP)는 “국민들이 그의 스트롱맨 리더십에 질려가고 있다는 명확한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민심 이탈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사정 악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3분기부터 터키는 국내총생산(GDP) 감소, 즉 후퇴 일로를 걷고 있다. NYT에 따르면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는데 청년층 실업률은 최대 30%까지 치솟았다. 터키 리라화 가치 역시 2018년 한 해 28% 폭락했고, 인플레이션도 20%에 달한다. 2003년부터 각각 총리와 대통령을 번갈아 맡아가며 터키를 이끌며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을 최대 치적으로 내세워 온 그로서는 입지가 위태로워진 것이다.
밖으로는 미국이 F-35 부품 인도 중단이라는 보복 조치를 내렸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토와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마찰을 빚어왔다. 미군 관계자들은 터키가 미ㆍ러 무기체계를 함께 운용할 경우 미국의 방산 정보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미국이 S-400 도입을 재고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무기체계를 박탈할 것이라 경고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도입을 강행하자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미국의 지원 아래 이슬람국가 격퇴전에서 활약한 쿠르드 민병대(YPG)를 터키가 자국 안보 위협으로 규정, 공격하려는 것도 양국 사이의 갈등 사안이다. WP는 “러시아 미사일이나 쿠르드족 문제를 놓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타협을 거부한다면, 미 행정부는 그를 ‘적’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지난해 미국인 목사 구금에 대한 보복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ㆍ제재를 부과하면서 시작된 터키의 경제난이 더 악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NYT는 “임기가 4년도 더 남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앞으로도 이슬람 가치를 고취시키면서, 러시아와는 밀착하고 미국과는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아슬리 아이딘타스바스 유럽이사회 국제관계 선임연구원은 NYT에 “그도 무적은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게 된 것”이라면서 “그에게 (이번 선거는) 재앙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데이비드 가드너 국제부문 에디터 역시 “자신의 권력을 재점검해야만 할 때가 찾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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