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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영화 '생일' 출연, 정치적 공방도 감당하겠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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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영화 '생일' 출연, 정치적 공방도 감당하겠다는 의미"

입력
2019.04.03 04:40
수정
2019.04.03 10:3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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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은 “영화 ‘생일’에 출연하기까지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며 “관객들도 용기를 내달라고”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전도연은 “영화 ‘생일’에 출연하기까지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며 “관객들도 용기를 내달라고”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두려웠고 부담스러웠다. 폭풍 같은 슬픔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왜 나에겐 이렇게 어려운 역할만 주어질까” 원망도 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펑펑 울었다. 두 번이나 출연을 고사했다. 그러는 사이 가슴엔 영화 ‘생일’(3일 개봉)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배우 전도연(46)은 애써 모른 척했다.

“영화 ‘밀양’(2007)을 찍고 나서 다시는 아이 잃은 엄마 역할은 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피했어요. 그런데 ‘생일’을 만난 거죠. 주변에 조언을 구했더니 하나같이 말리더라고요. 그때 가깝게 지내는 한 지인이 용기를 주셨어요. ‘네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네가 했으면 좋겠다’고요. ‘괜찮아, 한번 해 봐’라는 한마디 말이 저에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영화로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이제 그만 벗어나라고 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전도연은 “출연을 결심했다는 건 곧 영화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 정치적 공방, 그로 인한 상처까지 오롯이 감당하겠다는 의미”라며 “그동안 감당해 왔고 앞으로도 감당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생일’은 이종언 감독이 2015년부터 경기 안산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만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이 감독이 참여했던 ‘치유공간 이웃’은 아이들 생일이 되면 유독 힘들어하는 유가족을 위해 생일을 기억하는 모임을 마련하고 있었다. 유가족들은 흔쾌히 영화화를 허락해 주고 때때로 속내를 들려주거나 일상을 함께 보내면서 이 감독을 격려했다. 앞서 이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2007)과 ‘시’(2010) 연출부에서 일했다.

전도연은 슬퍼하는 엄마를 위해 감정을 숨기는 딸 예솔이가 안쓰러웠다고 했다. NEW 제공
전도연은 슬퍼하는 엄마를 위해 감정을 숨기는 딸 예솔이가 안쓰러웠다고 했다. NEW 제공

극 중 순남(전도연)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다. 창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면 아들 수호(윤찬영)인 것만 같아 내다보게 되고, 인기척도 없는데 반짝 켜지는 현관 등에 자꾸만 눈길이 머문다. 그에게 수호는 남편이고 애인이고 친구였다. 아들이 떠났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순남은 수호의 생일 모임을 갖자는 남편 정일(설경구)의 간절한 부탁도 차갑게 외면한다. “엄마가 아니어도 아프게 다가오는 이야기인데, 이젠 엄마의 마음도 알고 사건 자체도 잘 알고 있으니까 영화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자신을 의심하고 경계해야 했어요. 지금 이 감정이 온전하게 순남으로서 느끼는 감정인지, 혹여 내 슬픔이 앞서가는 건 아닌지.”

전도연은 카메라 앞에 자신을 내던지고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연기했다. 순남이 아들 옷을 끌어안고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도록 오열하는 장면에선 고통이 스크린을 찢고 관객을 덮쳐 온다. 전도연을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건 어린 딸 예솔이(김보민)였다. 오빠의 새 옷이 담긴 쇼핑백에 제 옷은 없나 슬쩍 들여다보고, 반찬 투정했다가 문밖으로 쫓겨나 울고, 갯벌체험 가서도 바다에 발을 딛지 못하는 어린 마음. 하지만 예솔은 저보다 엄마의 슬픔을 먼저 끌어안는다. 전도연은 “순남이 지옥 같은 삶을 버틴 건 예솔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전도연은 “이야기보다 감정이 앞설까 봐 시나리오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전도연은 “이야기보다 감정이 앞설까 봐 시나리오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남겨진 이들에게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견뎌내는 것이다. 함께 울어 주고 기억해 주는 이들 덕분에 유령처럼 흩어지던 순남의 일상에도 온기가 깃든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 위로하고 보듬으면 앞으로 견뎌야 할 날들이 조금은 덜 힘겹지 않겠냐고, ‘생일’은 관객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영화를 본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감독과 배우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전도연은 유가족 시사회에서 직접 자수를 놓아 만든 지갑을 선물받고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유가족 앞으로 한 걸음 내딛기까지 너무나 힘들었어요. 눈도 제대로 못 떴죠. 다만 이 말씀은 드렸어요. ‘생일’이란 영화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요.”

전도연은 “‘생일’은 힘들어도 해야 하는 이야기”라며 “죄스러운 마음에서 이제야 돌덩이 한 개 정도 내려놓은 것 같다”고 했다.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생일’과의 만남은 전도연의 삶에 깊게 새겨졌다. “나이 들면서 사는 게 지루하고 허무하게 느껴지곤 했어요. 삶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는 건데도요. 그런데 문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참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심히 일하고 아이와 함께 잠들 수 있는 날들이 참 감사해요.” 눈물을 참느라 내내 코끝이 빨갛던 전도연의 얼굴에 처음 웃음이 번졌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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