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많이 타는 한국 중ㆍ장년 남녀가 먹잇감
미군이나 외교관을 사칭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친분을 쌓고 돈을 뜯어낸 서아프리카 기반 국제 ‘로맨스 스캠(Scamㆍ사기)’ 조직이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2대는 2017년 8월부터 2년간 한국인 23명에게 약 14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나이지리아인 A(40)씨, B(32)씨 등 라이베리아인 5명, 한국인 G(64)씨를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서아프리카에 근거지를 둔 국제사기조직 ‘스캠네트워크’의 한국 지부장인 A씨 일당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시리아에서 포상금을 얻은 미군’이나 ‘거액을 상속받은 미국 외교관’인 척 하며 무작위로 한국인에게 접근했다. 대화를 이어가며 친밀감이 형성되면 “한국으로 재산 일부를 보내주겠다”고 속여 항공료와 통관비, 보관비 등 명목으로 송금을 하게 만들었다. 원유시추선 직원을 가장해 “허리케인으로 고장 난 드릴과 파이프 수리비를 30% 이율로 빌려달라”고 하거나, 위조지폐 기술을 보여주며 투자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런 수법에 당한 한국인 피해자는 중ㆍ장년층 남녀들로, 대부분 이혼을 했거나 미혼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액은 14억원 정도지만 경찰은 범행기간과 치밀한 수법 등을 감안할 때 숨겨진 피해자가 더 많아 피해액은 최대 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씨 등은 범죄 수익을 가나나 나이지리아로 송금하거나 타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통해 국내에서 인출했다. 송금액 중 일부는 다시 국내로 보내게 해 ‘돈 세탁’을 했고, 중고차나 중고차부품을 구입해 서아프리카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수익 극대화를 시도했다.
경찰 조사결과 한국인과 결혼한 A씨를 제외한 라이베리아인 5명은 난민 신청을 했지만 난민 지위를 인정 받지 못해 소송을 진행하며 한국에 체류 중인 상태다. 이 중 두 명은 소송에서도 패소한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경찰은 이들이 난민 소송 중에는 합법적으로 국내에 머무를 수 있는 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나이지리아의 스캠네트워크 본부 총책 등을 붙잡기 위해 인터폴에 공조 요청을 검토하는 한편, 한국 지부의 통장모집책 등을 추적 중이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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