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을 앓고 있는 몸무게 불과 20㎏의 일본 여성이 엄마와 태아 모두 사망할 위험을 무릅쓰고 임신 27주만에 제왕절개로 남자아이를 출산, 건강하게 기르고 있는 사실이 알려져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주인공은 나고야(名古屋)시에 사는 데라시마 치에코(寺嶋千?子. 32)씨다. 그는 국가지정 난치병인 척수성근위축증(SMA. Spinal Muscular Atrophy) 환자다. SMA는 근력이 저하되는 진행성 난치병으로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 등뼈가 휘인 중증 지체부자유자여서 24시간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동할 때는 휠체어가 필수다. 체중은 초등학교 1학년생과 같은 20㎏ 정도다.
1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치에코는 작년 4월4일 남편 시게히토(成人. 29)와 함께 나고야 제2적십자병원 신경내과 주치의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예상대로 "의사로서 권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는 진작부터 "임신하지 말라"고 충고했었다. 태아로 인해 횡경막이 압박당하면 호흡을 할 수 없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출산이 곧 생명을 잃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다만 "이 문제만은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다"며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라고 권했다.
다음 주 찾은 나고야 제2적십자 병원 산부인과에서 가토 노리코(加藤紀子. 57) 산부인과 부장은 치에코의 '꿈'을 이해한다면서도 "출생 가능성은 99% 없다", "엄마와 태아가 모두 사망할 수 있다"며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 줬다. 의사들이 조사한 바로는 치에코 정도 중증 SMA 환자의 출산 사례는 일본 국내에는 없었다. 가토 부장은 "의사로서 사망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 임신을 계속하도록 권할 수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임신, 출산이 치에코의 몸에 미칠 영향은 그밖에도 많았다. 호흡상태가 악화하면 목숨을 건지더라도 기관지를 절개, 평생 인공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이는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의미다.
어렵게 출산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더라도 제왕절개를 통한 조산이 불가피해 아이에게 중증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도 있다. SMA는 유전성 질환이다. 양친 중 한쪽이라도 관련 유전자를 갖고 있을 경우 태어날 아이도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
가토 부장은 치에코의 몸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기구로 태아를 긁어내는 소파중절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임신 10주째인 4월 하순까지 결단을 내리라고 통보했다.
현재 64세인 치에코의 아버지와 58세인 어머니는 1987년 장녀로 태어난 치에코가 잘 서지 못하는 걸 발견, 병원을 찾은 끝에 SMA라는 걸 알았다. 당시만해도 장애아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나눠 공부하는걸 당연시 하는 시대였지만 양친은 교육위원회와 담판을 거쳐 딸을 동네 초·중학교 일반 학급에 보냈다.
치에코는 단기대학을 졸업한 후 장애자의 자립 지원복지법인인 'AJU 자립의 집' 활동에 관여하면서 장애인시설이 아닌 일반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헬퍼로 일하는 남편 시게히토와 만나 2017년 여름부터 둘이서 살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가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장애여부에 관계없이 같이 배우는 '인클루시브 교육'울 주제로 미국내 학교 등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나고야시 장애자운동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는 인사다.
그가 현재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준건 항상 그의 둥을 떠밀어준 양친이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더라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그런 부모니 만큼 치에코 자신이 출산을 결심했다고 하면 응원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사에게서 출산에 따른 위험에 관해 설명을 들은 부모는"떼를 쓸 일이 아니다", "기관지를 절개하면 된다고 하지만 아이를 낳는다는 건 그런게 아니다"라며 딸에게 출산을 포기하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치에코는 양보하지 않았다.
중절을 결정해야 하는 시한은 각일각 다가왔다. 4월27일 병원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남편 시게히토는 아내에게 "내가 지우자고 하면 지울거냐"고 물었다. 아이를 갖고 싶어했던 남편으로서 망설이던 끝에 한 말이었다. 진료실에 들어선 치에코가 "어째야 좋을지 나도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면서 의사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어머니로부터 메일이 왔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새 생명을 기르는 건 자연스런 일이고 행복이다. 네가 그걸 쑴꾸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네가 고통없이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튼튼한 몸으로 낳아주지 못한게 한스럽기 짝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나고야 제2적십자병원 측은 치에코의 임신이 확인된 시점에서 부터 외래진료를 올 때 마다 의사 몇명이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산부인과 가토부장을 포함해 누구 한사람도 임신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위험한 임신이었다.
가토 부장은 최악의 결과가 되면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인공호흡기를 달고 평생 목소리를 잃더라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치에코의 말에 마침내 30년 경력의 베테랑 산부인과 의사로서 "내 목을 걸고" 출산을 돕기로 결심했다.
병원은 환자와 의사의 방침이 달라 윤리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 의료봉사자, 윤리학 전문 대학교수 등 31명으로 구성되는 '윤리컨설테이션팀'에 치에코건을 상정했다. 팀은 임신과 출산에 따른 위험을 열거한 '설명서'에 본인과 남편이 서명하면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5월2일 치에코와 시게히토가 설명서에 서명했다. 사실혼 관계였던 두 사람은 5월 하순 결혼하고 출산준비에 나섰다.
첫 관문은 임신 15~16주 였다. 자궁 확장으로 엄마의 호흡상태 악화가 우려되는 시기였다. 13주째가 초음파 검사에서 태아의 손발과 손가락, 등뼈 등이 판별됐고 태동도 느낄 수 있게 됐다. 치에코는 임신 14주째 일기에 "배를 만지니 움직인다. 팔딱팔딱 뛰는 느낌"이라고 적었다.
15주째 태아가 남자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17주째 태아는 허리둘레 54㎝인 치에코의 좁은 뱃속에서 순조롭게 자라고 있었다.
21주째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22주째 태아가 자궁밖으로 나오더라도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기간이 됐다. 생존 확률은 50%. 의사들은 후유증을 고려하면 26주까지 버텨주기를 기도하면서 "하루 더 버티면 아기 생존율이 3%씩 올라간다"며 격려했다.
24주째인 8월1일 출산에 대비해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측은 산부인과, 소아과, 신경외과, 약사, 영양사 등 20명으로 전담팀을 구성했다.
산모 1명을 위해 이 정도 규모의 팀을 구성하기는 처음이었다.
25주째 자궁팽창이 한계에 접근했다. 호흠은 물론 산모의 신장에 부담이 가고 허리뼈도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출산 시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의사회의에서 "27주째가 한계"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8월27일이 제왕절개일로 정해졌다. 자궁밖으로 나오더라도 생존 확률이 90% 이상이고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도 적다고 판단했다.
당일 오전 10시25분에 수술을 시작, 10분후 아이를 끄집어 냈다. 엄마를 마취한 영향으로 태아도 잠든 상태여서 울지 않았지만 인공호흡을 실시하자 맥박수가 증가하면서 깨어났다. 아이는 다음날인 8월22일 엄마와 대면했다. 체중 776g, 신장 32.5㎝로 태어난 남자 아기는 12월6일 퇴원할 때 체중 3.3㎏으로 자랐다. 생후 7개월인 현재 아기는 체중이 6.2㎏으로 불었다.
치에코 부부는 모유로 아이를 키우면서 지난달 3일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등 행동반경을 넓혀가고 있으며 지난달 말에는 집 근처에서 벚꽃구경도 했다고 아사히가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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