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교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통은 강대국이 되는 조건이기도 하지만, 국력을 유지하는 요소로도 작용했다. 동서고금의 패권 국가들인 로마와 몽골, 스페인, 영국, 미국은 문화와 교통기술, 교통로를 장악했다. 패권 국가가 아니더라도 국부를 어느 정도 보유했던 강국들은 예외 없이 그 시대의 교통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부국과 강국은 그 시대의 고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수집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고부가가치가 집적된 곳이 바로 부국 혹은 강국이다. 교통과 통신은 공간적으로 분리되고 제한된 가치들을 시간적으로 가깝게 통합시켜, 땅과 물건, 사람, 정보 혹은 이용하는 모든 것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그런 이유에서 부국과 강국은 교통과 통신을 활용해서 고부가가치를 수집하고, 재분배하고 관리하면서 힘을 키우고 유지해 왔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제일 먼저 고조선 시기 우수한 마차 바퀴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고구려의 기마행렬이 나오고, 장보고와 왕건의 해상 세력, 이순신의 판옥선·거북선이 뒤따라온다. 그렇지만 구한말 서양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형편없는 소롯길을 힘겹게 가는 소달구지, 항아리 열댓 개를 지게에 지고 힘겹게 서 있는 보부상의 모습이 나타난다. 한국사는 고대의 선진적인 운송과 교통 시설이 근대로 오면서 쇠퇴해 온 역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자동차 산업과 고속철, 조선업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큼 성장했다. 교통 기술과 시설이 시대적 소임을 충실하게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이 자체로는 기쁜 일이다. 다만 앞으로가 문제다. 21세기 사회는 항공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항공로가 확장되고 점점 더 촘촘하게 연결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과연 잘하고 있는지 회의가 든다. 항공 산업과 항로 확장을 주저하는 듯 한 모습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에 대한 도전은 늘 두렵다. 또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항공산업과 항로 확장이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더 나은 항공기술과 이용자 편의를 위해 나라의 명운을 걸고 있다. 우리도 과감한 투자, 서비스 질의 향상, 교육과 훈련, 수요 창출 등 사회 전반의 시스템 정비와 시대를 앞서가는 비전이 절실히 필요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른바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의 교통 정책과 고부가가치 창출 과정을 살펴보면, 강대국이 되고 또 유지하는 조건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오랜 기간 기술의 발전, 자원의 배분, 사회제도의 정비 속에 고부가가치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반면 소련연방은 세계대전 직후 아주 단기간에 놀라운 고부가가치를 신속하게 달성했다. 종전 직후 독일의 선진적 고부가가치를 쓸어 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련은 이것을 관리하고 재분배하는 데 실패했다. 지금도 러시아는 교통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에 비해 미국은 교통과 통신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 수준을 유지했고 새로운 혁신들이 거듭되고 있다. 한 나라는 교통을 비롯한 고부가가치산업을 육성하여 강국을 유지한 반면, 외부 기술을 수용하여 관리하는 것에만 만족했던 한 나라는 1990년대 초반 연방이 와해되는 비극을 맞보았다.
모든 분야가 다 그러하지만, 교통도 최적의 타이밍과 기술혁신, 틈새를 뚫고 자리를 확보하는 포지션 전략과 용기가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강인한 추진력과 투자의지, 그리고 장기적 전망과 인내이다. 사실 항공 산업과 항공로의 확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교통 분야에 던져졌던 화두였다. 우리는 한 시대 늦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관할 필요도 없다. 서둘러서는 안 되지만 기회를 놓쳐서는 더더욱 안 된다. 항공수요의 창출은 그 중에서도 가장 우선된 일이다.
우리나라 ‘동남권’에서 신공항 문제로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시절 대구·경북은 K2 공군기지 이전과 연계하여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으로, 부산·경남은 기존의 김해 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 바 있다. 그렇지만 최근 부산·경남지역을 중심으로 가덕도 신공항 문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항공산업의 발달과 항로 개척이 지역의 명운을 결정짓게 한다는 점을 ‘동남권’ 지방 정부와 지역 주민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최고의 항공 기술과 서비스 체계가 응축된 새로운 허브 공항으로서의 제2의 인천공항의 건립이 요망되고 있다.
김신호 대구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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