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4월 20일쯤 꿀고구마를 심었는데요. 고구마 캐는 도중에 뿌리 옆에서 두더지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물론 두더지가 흔하게 있긴 하지만 못 보신 분들께 두더지가 이렇게 생겼다는 걸 보여 드리기 위해 제가 지금 두더지를 찍고 있습니다.”
“하우스 고구마 싹에는 퇴비를 많이 쓰게 되는데, 퇴비를 쓰면 지렁이가 많이 생깁니다. 그러면 두더지가 살면서 새끼도 낳고 해서 많아져요. 고구마 씨를 묻고 물을 주면 이 두더지가 고구마 싹 밑에서 고구마를 번쩍 들어가면서 굴을 뚫고 다닙니다. 길을 만들어 그 길로 다니더라고요. 두더지가 새벽과 저녁에 굴을 지나다니면서 지렁이를 잡아먹어요. 두더지가 땅을 팔 때 앞을 밟게 되면 두더지는 후진을 잘합니다. 그래서 두더지가 앞을 팔 때 뒤를 막으면 도망가지 못합니다.”
밭에서 두더지 잡은 얘기다. 영상 편집이 화려하다거나 재담이 유려하지도 않다. 고무 대야를 끼고 앉은 예순다섯 살의 늙은 농부가 느릿느릿한 말투로 대야 속에서 꼼지락대는 두더지를 가리키며 어떻게 잡았는지 설명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대박’ 났다. 6개월 만에 누적 조회 수 400만회를 넘었다. “대체 이게 왜 추천 영상이냐고 했다가 홀린 듯 다 봤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두더지로 망친 농사, 유튜브 광고로 보충해 보라”는 충고도 줄이었다. 유튜브 채널 ‘성호육묘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요즘 ‘대세 채널’이라는 유튜브로 농부들도 달려가고 있다. 첨단 디지털과 만난 아날로그 농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50년 경력 농부 “구독자 10만 이벤트를 어떻게 하죠?”
‘성호육묘장’의 주인장은 안성덕(65)씨. 9개월간 영상 160여개를 올렸고, 누적 조회 수는 1,350만회에 이른다. 영상 1개당 평균 조회 수 8만3,600여회 정도니 ‘중견급 유튜버’라 불릴 만하다. 50년이 넘은 농사 경력에 비해 유튜버 경력 9개월은 짧디 짧지만, 2~3일에 한 번씩 꾸준히 영상을 올린다. 안씨의 최근 고민은 ‘구독자 수 10만명 돌파 이벤트’다. 유튜브를 시작할 땐 “올 연말쯤에야 10만명을 넘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난 3월 말 돌파해버렸다. “몇 안 되는 사람에게 비싼 걸 주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고루 나눠 주려면 수건 3장씩 100명에게 나눠 줄까 싶다”는 안씨의 고민은 영락없는 유튜버의 모습이다.
안씨는 천생 농사꾼이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무, 배추를 심어다 리어카로 청과시장에 내다팔았다. 지금까지 안 해 본 작물이 없다. 유튜브 채널을 만든 건 이런 노하우를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유튜브로 농사 방법을 공유하면 내가 배우는데 5년 걸렸던 노하우를 다른 사람은 2~3년 만에 익힐 수 있지 않겠나”는 게 안씨의 말이다.
안씨의 유튜브 채널 재생 목록엔 ‘성호육묘장 동물 소개’도 있다. 작은 연못에 사는 참개구리부터 하천을 누비는 야생 오리, 도토리를 까먹는 청설모와 알을 품고 있는 꿩까지. 농장 주변에 사는 자연을 그대로 유튜브로 옮겨 담았다. 유튜브 시청자들은 안씨가 올린 영상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마음이 편안해져 귀농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고 하는 시청자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안씨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농사 관련 정보를 찾고자 들어오는 중ㆍ노년층이 다수지만, 동물 영상만큼은 자연을 직접 경험한 바가 적은 젊은 층이 다수다.
별안간 덩치가 커져버린 유튜브 채널 때문에 ‘경작’이 아닌 ‘창작’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안씨는 “채널 관리를 하려면 한 주에 최소한 한두 개씩 영상을 올려야 하는데 어떤 걸 찍어 올릴지 항상 고민”이라고 말했다. 금세 늘어난 인기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유튜브 채널을 보고 그에게 농사를 배우겠다며 불쑥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안씨는 “지난달 30일 하루에만도 4~5팀이 농사 노하우를 묻기 위해 농장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24살 농부 유튜버 ”농촌은 ‘버라이어티’”
1호 농부 유튜버로 꼽히는 이는 ‘버라이어티 파머’라 불리는 오창언(24)씨다. 오씨는 ‘촌스럽다’는 말에 담긴 편견을 깨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2017년 3월 2일 유튜브를 시작하며 자신을 “농사꾼이자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완벽한 촌놈”이라 소개했다. 고향인 강원 인제군에서 ‘버라이어티 팜’이라는 이름의 농장을 운영하는 오씨는, ‘버라이어티’라는 말 그대로 농촌의 삶이 얼마나 다채롭고 즐거운지 보여 주고 싶어한다.
오씨는 농촌을 깔보고 천대하는 시선을 바꾸고 싶어한다. 오씨는 어릴 적 꿈이 농부였다. 학교가 끝나면 밭으로 가 부모님 밭에서 배추를 나르거나 고추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게 일과였고, 자연스레 자기만의 밭을 가꾸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사회는 이런 오씨의 꿈을 비웃었다. 농업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오씨에게 “농고는 ‘꼴통’들만 가는 곳”이라며 “차라리 인문계고에 가라”는 식이었다.
한국농수산대학까지 졸업한 오씨는 곧장 고향으로 돌아와 밭을 임대해 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농부의 삶을 유튜브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대학 3년간 운영하던 농업 관련 블로그도 과감히 접었다. 오씨는 “농촌을 무시하고 가엾게 여기는 색안경 낀 시선을 바꿀 방법은 농업에다가 문화를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당시 떠오르던 1인 미디어에 농업을 접목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오씨에게 농촌의 일상 자체가 모두 잠재적 콘텐츠다. 장작 팰 때 쓰는 유압 도끼, 가지를 자를 때 사용하는 전동 가위 같은 농기구 리뷰에서부터 나뭇가지를 이용한 계곡 낚시까지. 젊은 시청자들은 생경한 광경에서 재미를 찾고, 나이 든 시청자들은 어릴 적 향수에 젖는다. 가령 오씨가 가을 산에 올라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과정을 찍은 영상은 “어릴 적 산에서 송이를 따다 아궁이에 넣어 구워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거나 “송이버섯을 보내 주시는 할머니가 떠올라 뭉클하다”는 반응들을 끌어냈다.
오씨에게 유튜브 관리는 자신이 훗날 참고할 ‘농사 일지 쓰기’ 작업이기도 하다. 오씨는 “그날 일지를 남기는 게 중요한 농사에서 과거의 기록을 생생하게 영상으로 남기면 보다 효율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귀농 후 발품 팔아 익힌 농사..."유튜브로 공유해요"
충남 예산군에서 체리와 사과 농사를 짓는 이태형(53)씨는 마을에서는 ‘막둥이’다. 하지만 유튜브 구독자들은 그를 ‘교수님’이라 부른다. 이씨가 유튜브 채널 ‘날라리 농부’에서 하는 농업 강의 때문이다. 고추, 콩, 블루베리, 사과 등 작물 기르는 법부터 인산 칼슘 비료 만들기, 제초제 사용법 등 농업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꿀팁’을 올린 지 1년. 채널에 있는 강의 영상만 200개가 넘어섰다.
이 귀한 정보들은 이씨가 귀농 이후 발품을 팔아가며 익혔던 농사 노하우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들이다. 인천에서 유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던 이씨는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사업을 접고 귀농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농사짓던 모습을 봤던 것 외에는 농사 경험이 없는데다 예산군에는 아무 연고도 없어 도움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았기에 귀농 초반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작물을 하겠다며 2000년대 초반부터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등 상품 작물을 심었지만 판로가 없어 헐값에 넘기기를 수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씨는 발품을 팔면서 농사 기술을 익히려 애썼다. “1년에 다닌 자동차 주행 거리만 6만㎞에 달했다”는 이씨는 농사 좀 짓는다고 소문난 농부들을 모조리 다 찾아 다녔다.
이씨는 충남농업기술원 농업인대학에서 현장 교수로 농업인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더 많은 농업인에게 노하우를 나누고자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 이씨는 “농촌 마을회관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농사는 주된 화젯거리가 아니다”며 “농사 경력만 수십 년인 어르신들도 농사에 대한 정보를 새로 익히고 나누기보다는 몸에 익은 대로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축적된 농사의 노하우들이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게 너무 아깝다는 얘기다.
유튜브 농부들의 간절한 바람은 오직 하나, 신뢰 형성이다. 농부는 작물에 최선을 다하고, 소비자는 그만큼 그 작물을 믿고 먹을 수 있게 된다. 그 마음으로 농부 유튜버들은 낮에는 밭을 갈고 저녁엔 영상을 올린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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