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갔던 노라, 알파걸로 다시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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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갔던 노라, 알파걸로 다시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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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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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인형의 집 Part 2’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의무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찾기 위해 집을 나갔던 노라가 15년 만에 다시 돌아 왔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연극 '인형의 집 Part 2'에 출연하는 배우 손종학(인쪽부터) 우미화 서이숙 박호산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LG아트센터 제공

140년 전엔 아내가 자아를 찾아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다는 설정 만으로도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1879년 초연한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 헬메르가 그랬다. 노라는 아내와 어머니의 의무에 치이는 대신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문을 박차고 나갔다. 오늘도 수많은 여성이 문을 노려보며 고민한다.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는 질문을 던졌다. “노라가 집을 나간 뒤,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 물음에서 출발해 ‘인형의 집’을 변주한 ‘인형의 집 Part 2’를 썼다. 네이스는 노라가 불행해지고 말았을 거라는 가부장적 상상을 거부했다. 집을 나간 노라는 작가로 성공한다. 돈도 잘 벌고 연하의 애인과 연애도 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201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인형의 집 Part 2’는 토니어워드 8개 부문에 후보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상영된 연극으로 선정될 만큼 평단과 관객에게 호평 받았다. 돌아온 노라가 이달 10~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한국 관객을 만난다. 노라와 남편 토르발트를 번갈아 연기할 배우 서이숙ㆍ우미화, 손종학ㆍ박호산을 최근 나란히 마주했다.

1894년 노라가 다시 나타나는 건 집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토르발트와 정식 이혼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알고 법적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다. 노라를 옥죄었던 ‘집’은 15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노라는 15년 동안 깨우치고 왔는데, 집에서는 다시 근본적인 문제로 싸워야 하는 거예요. 똑같은 벽에 또 부딪히는 느낌인 거죠. 그 반복이 뿌리 깊은 제도와 아집을 그만큼 바꾸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같아요.”(서이숙)

연극 '인형의 집 Part 2'에서 노라 헬메르를 번갈아 연기하는 배우 우미화(왼쪽)와 서이숙. 서이숙은 "15년 뒤에도 노라가 예전과 같은 벽에 또 부딪힌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논쟁거리가 무엇일까 생각했다"고 했다. 우미화는 "그 동안 집 떠난 노라가 파멸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너무 멋지게 돌아오는 모습으로 이 작품이 1장을 시작한다는 데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노라는 자신이 떠난 자리에 남아있던 사람들과 차례로 대면한다. 그리고 여전히 높은 벽을 만난다. 벽을 사이에 둔 노라와 인물들은 ‘자기 입장에서 보면’ 합당한 말을 쏟아낸다. 노라는 남편이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애쓴 과거를 한탄하며 결혼 제도의 문제점을 역설한다. 토르발트는 노라를 진심으로 사랑했을 뿐이라면서 노라가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대신 도망가버렸다고 비난한다. 딸 에미는 15년간 엄마가 없이 자라며 마음에 응어리가 졌다고 호소하고, 유모인 앤 마리는 에미를 키우는 데 젊음을 다 써버린 것을 애통해한다.

배우들이 ‘인형의 집 Part 2’를 ‘언어 전쟁’이라고 축약한 이유다. 무대 위 인물들은 ‘자유 대 책임’ ‘애착 대 고독’ ‘안정 대 자아실현’의 구도로 설전을 벌이며 극을 이끌어간다. 우미화는 “사회적 규범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얼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며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선 논쟁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래도 연극은 희망적이다. “두 자아가 만나서 서로의 존재를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항상 생각해요. 노라가 제기한 문제가 한 세기가 또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인형의 집 Part 3’도 나올 수 있겠죠. 작품의 핵심은 서로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과정’이에요. 그런 과정을 겪는 것 자체를 성장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서이숙) “원작에서 노라는 이해 받지 못한 채 혼자 싸우러 나가요. ‘Part 2’에서 노라는 집을 또 나가지만, 5년 전보다는 가벼운 마음일 거예요. 노라를 또 한번 보내는 토르발트 역시 한 단계 생각이 많아지겠죠.”(박호산)

무대 위엔 등장인물 4명 중 2명이 번갈아 올라 뜨거운 언쟁을 벌인다. 별다른 무대 세트 없는 극을 견인하는 건 배우들의 단단한 내공이다. 연극계에서 잔뼈 굵은 배우들이 캐스팅된 이유다. 방송과 영화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있는, ‘잘 나가는’ 배우들이다. 손종학은 영화 ‘공모자들’ ‘내부자들’ 등에, 서이숙은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더 뱅커’ 등에 출연했다. 우미화는 드라마 ‘SKY 캐슬’의 ‘도훈 엄마’를 맡았고, 박호산은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문래동 카이스트’를 연기했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를 ‘연극인’이라 불렀다. 무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아니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냥 공연이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방송은 ‘티스푼으로 진수성찬 먹는 느낌’이거든요. 연극은 배우들의 권한이 더 많기 때문에 밥을 막 퍼먹을 수 있는 곳이죠.”(박호산) “저에게 연극은 의무이고 의식이에요.”(서이숙) “연극은 집이에요. 한 두 달 동안 숙성하며 완성하니까요.”(우미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무대를 해서, 무대에 오르면 편안함을 느껴요.”(손종학)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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