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모처럼 미세먼지가 잦아든 쾌청한 날씨였다. 봄 햇살을 실컷 누리고 싶은 생각에 사무실 부근 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캠퍼스 여기저기에는 봄꽃들이 겨우내 참아왔던 꽃망울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인지라 피크닉 탁자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필자도 갑자기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교내에 있는 편의점을 찾아가 도시락을 사 들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도시락을 맛있게 비우고 나서 애장품인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때마침 빈필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2악장의 부드러운 선율은 살랑거리는 봄바람의 리듬과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었다. 그 순간 그 곳은 나 만을 위한 콘서트홀이 되었다.
필자는 30년 가까이 검사로 일하면서 과천 정부청사 내 법무부에 근무할 기회가 많았다. 법무부 청사는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지라 봄이 오면 자주 점심시간을 이용해 나만의 상춘 산소풍을 했다. 그때마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다. 법적으로야 등기부상 주인이 따로 있겠지만, 지금 이곳에 피어 있는 꽃 내음을 맡는 이가 바로 나이고, 지금 이곳 계곡에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이도 바로 나이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야말로 이 산의 진짜 주인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말이다.
필자는 법조에서 일하면서 돈 때문에 수많은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목도했다. 억울한 금전적 피해를 당해 발생한 사건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돈에 대한 과욕 때문에 빚어진 안타까운 사건들도 많이 보아 왔다. 그러면서 언제부턴가 자신이 살아 생전 쓰지도 누리지도 못할 돈 때문에 사생결단하는 사람들을 보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돈 얘기가 나왔으니, 그렇다면 사람들은 얼마만큼 벌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미국의 한 기자가 갑부 록펠러에게 똑 같은 질문을 했다. “얼마나 벌어야 만족할 수 있습니까(How much money is enough?)”라는 질문에 대해 록펠러는 “조금 더(Just a little bit more)”라고 재치 있게 답했다. 그만큼 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돈을 벌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돈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정당하게 땀을 흘려 번 것이라면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무작정 채우고 늘리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돈 버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돈에 대한 맹종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의 삶을 위험 속으로 빠뜨리기 때문이다.
누구의 통찰대로 행복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얼마큼 소유하는 것(having what you want)”이 아니라 “당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얼마큼 원하는 것(wanting what you have)”에 달려 있다는 말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 곁에 있고, 가지고 있는 가족, 이웃, 물질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소통하며 활용하고 있는가. 어른이 되어서도 놀이방 가득한 장난감은 거들떠보지 않은 채 새로운 장난감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난 어린아이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소원을 말하라고 하니 디오게네스가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좀 비켜 주시오!”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알렉산더가 누구인가. 온 세상을 정복한 대제였다. 그런 그를 거지 중의 상거지인 디오게네스가 무안을 준 것이다. 디오게네스가 던진 메시지는 이런 것 아니겠는가. “알렉산더 대왕. 지금 내가 누리는 햇볕을 그대가 누리지 못한다면 그대가 온 세상을 정복하고 온 세상을 소유한다 해도 그대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네 그려”라고 말이다.
김희관 변호사ㆍ전 법무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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