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8년만에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가장 많은 지역구 의원을 배출한 정당이 비례대표에서는 한 석도 얻지 못할 것으로 확실시 되면서 태국 야권 결속이 가속화 하고 있다. 편파적인 선거법을 통해 장기 집권하려는 군부에 대한 반감이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그 가능성은 낮지만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가 집권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1일 일간 방콕포스트가 지난달 선관위가 발표한 지역구 의석수와 득표수를 바탕으로 자체 집계한 비공식 개표 결과에 따르면 탁신계 푸어타이당은 총 137석, 군부정권 지지 팔랑쁘라차랏당은 총 118석을 각각 얻어 제1, 2당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어 젊은 층의 높은 지지를 받은 퓨처포워드당은 87석, 정통보수 민주당은 54석으로 각각 예상됐다. 이번 선거는 하원의원 500명을 뽑는 선거로, 지역구 350명, 비례대표 150명이 각각 선출된다.
문제는 이 같은 성적을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으로 분리, 비교했을 때다. 137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푸어타이당의 경우 오롯이 지역구 의석만으로 137석을 채우게 된다. 비례대표 의석은 ‘0’이다. 반면 랑쁘라차랏당은 지역구 97석을 얻는데 그쳤지만, 비례대표 21석을 차지하면서 푸어타이당 뒤에 바짝 설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결과는 군부정권이 주도해 2016년 만든 선거법에 따른 것이다. 득표율에 비례해 산정하던 비례대표 의석수는 정당 득표율에 하원 전체 의석수(500)를 곱한 뒤 해당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를 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즉, 지역구 의석 점유율이 정당 득표율보다 낮을 경우 비례대표 의석으로 보전하고, 그 반대일 경우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지 않는 방식이다. 선거에 약한 신생 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안이다. 팔랑쁘라차랏당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현직 장관 4명으로 창당했다.
현지 정가 관계자는 “탁신계를 견제하기 위한 새 선거법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법이 이토록 큰 차이를 낼 줄은 몰랐다”며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 각 정당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오자 이 같은 법을 통해 정권을 연장하려는 군부 정권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더욱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7일에는 군부정당 팔랑쁘라차랏당을 제외한 주요 7개 정당이 연합 정부 구성에 나섰고, 최우선 목표로 쁘라윳 총리의 재집권 저지를 내걸었다. 또 28일에는 퓨처포워드당을 이끌고 있는 타나톤 쭝룽르앙낏 대표가 푸어타이당이 자신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번 선거 후 정부구성을 앞두고 전선은 군부, 반군부로 더욱 명확해지는 분위기다. 퓨처포워드당은 전체 87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 제3당이다.
타나톤 대표는 “(쿤잉 수다랏 푸어타이당 대표의 총리직 제안은) 야권 연합을 조건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NCPO)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NCPO는 쁘라윳 총리가 임명한 인사들로 구성된 국가평회의 격의 조직으로, 상원의원 250명을 지명한다. 이 250명은 하원 500명과 함께 총리 선발 투표에 참여하며, 과반인 376명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총리가 된다.
현지 소식통은 “연합정부 구성은 푸어타이당이 하게 될 것”이라며 “야권이 더 뭉친다면 총리 자리도 야권이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어타이당으로부터 총리직을 제안 받은 퓨처포워드당의 나타톤 대표는 타이 서밋 그룹 창업자의 둘째 아들로, 이른바 금수저 출신이시면서 기존 정치세력에 반기를 들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인물이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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