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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도시농부 212만명…8년새 14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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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도시농부 212만명…8년새 14배 늘었다

입력
2019.04.03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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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 제공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 제공

일본 아키타현의 작은 산간마을 고모리 출신인 이치코. 대도시 편의점 인스턴트 식품에 질린 이치코는 어느 날 빈 컵라면 그릇에다 ‘래디시(적환무)’를 기른다. 스티로폼 용기, 쟁반 물받이, 비료 섞인 흙, 가끔 주는 물이 전부인데, 그렇게 자란 래디시는 이치코만의 특제 절임 반찬으로 다시 태어난다. 일본의 영화 원작 ‘리틀 포레스트’는 그저 이치코가 이것저것 키워서 밥 짓고 상 차려 먹는 행위만 보여 줄 뿐이다.

고작 뭔가 길러 밥 해먹는 게 전부였는데, 그게 ‘허기 이상의 허기’를 채워줬던 모양이다. 지난해 2월 같은 제목의 한국 버전 영화가 개봉됐을 때도 15억원 들인 저예산 영화에 150만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묵묵한 노동, 싱그러운 제철 음식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젊은 세대가 유튜버 농부들 영상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일부는 열광을 넘어 아예 ‘농부 되기’에 실제 도전하기도 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내곡동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도시농업전문가양성교육에 직접 참여해 봤다. 이 교육 과정은 도시 내 건축물, 텃밭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농사 지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비 도시 농부들이 삼삼오오 조를 짜 밭에 씨감자를 심고 있다. 이현주 기자
예비 도시 농부들이 삼삼오오 조를 짜 밭에 씨감자를 심고 있다. 이현주 기자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 쉽지 않아요

밭작물 중 예비 농부들이 가장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건 감자, 옥수수, 고구마 등이다. 모종이 흔하고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키울 수 있어서다. 농업기술센터도 이 작물들로 ‘기본기’를 다질 것을 권한다. 그 중 감자는 14~23도의 서늘한 기온에서 재배하기 적당해 3월 중순부터 씨를 뿌릴 수 있다. 겨우내 심심했던 초보 농부들이 기지개를 켜기 알맞은 작물이다. 이날 교육에 참가한 50여명도 씨감자 심기에 도전했다.

우선 밭에 심을 씨감자를 마련해야 한다. 약 100g 내외 감자의 끝눈(싹이 몰려있는 부분)부터 반대편 배꼽까지 십자 모양으로 자른다. 감자 전체가 갈라지지 않도록 아랫부분은 남겨두고 1주일가량 절단면이 치유되도록 놔두면 밭에 심은 후 부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음은 십자 모양으로 자른 씨감자 심기. 농업기술센터 측이 수강생들을 위해 미리 감자를 심을 두둑과 고랑을 마련해 놨지만, 밭을 다지는 일도 원래는 농부의 몫이다. 예비 농부들은 삼삼오오 조를 짜 역할 분담을 했다. 파종기로 두둑에 구멍을 파는 사람, 파낸 자리에 씨감자를 뿌리는 사람, 씨감자 위에 흙을 덮는 사람 등으로 분업을 해야 효율적이다. 농사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지만 두둑에 꽂아 흙을 파내는 파종기를 처음 본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기자도 직접 파종기로 두둑을 파보았는데, 제법 묵직한 쇳덩이인 파종기가 마음처럼 쉽게 다뤄지지 않는다. 감자는 두둑 표면에서 15㎝ 아래에 깊이 심어야 하는데, 파종기를 발로 힘껏 밟아 줘야만 구멍이 깊이 난다. 구멍과 구멍 사이도 20~30㎝ 가량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교육은 파종에서 끝났지만 6월 수확기 때까지 감자가 거저 자라는 것은 아니다. 줄기와 뿌리가 두둑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두둑을 덮어 주는 ‘북주기’,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잡초를 없애고 굳어진 겉흙을 부숴 주는 ‘김매기’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씨감자를 직접 잘라보고 있다. 이현주 기자
씨감자를 직접 잘라보고 있다. 이현주 기자
도시 농부 이건구씨가 지난달 23일 서울 내곡동 서울시농업기술센터 텃밭에서 파종기로 감자를 심고 있다. 이현주 기자
도시 농부 이건구씨가 지난달 23일 서울 내곡동 서울시농업기술센터 텃밭에서 파종기로 감자를 심고 있다. 이현주 기자

◇농사 배우는 이유? 그리움ㆍ보람

이날 두둑 파기에 유난히 재능을 보인 이건구(59)씨는 이미 10여년째 텃밭을 가꿔온 베테랑 도시 농부라고 한다. 서울 오금동에 사는 이씨는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민영 농장에 3평짜리 텃밭을 빌려 쓰고 있다. 이씨는 “농한기를 제외하고는 3월부터 11월까지 내내 상추, 깻잎, 쑥갓, 아욱, 토마토 등을 돌아가며 심는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통신공학을 전공한 뒤 관련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다, 2015년 방송통신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이씨가 텃밭을 가꾸는 건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경남 거창군에서 태어나 열 살 되던 해에 상경했지만 고향 풍경이 아직도 생생히 그려진다고. 이씨는 “겨울이 지난 뒤 새싹들이 언 땅을 박차고 올라올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파란 하늘 바탕에 빨갛게 감이 익어가는 모습, 비바람을 맞은 밤송이들이 벌어져 땅에 떨어져 있는 풍경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이씨는 덧붙였다. 요샌 찾아보기 힘든 지렁이, 달팽이 같은 곤충도 이씨에겐 마냥 귀엽기만 하다.

함송아(30)씨는 차가운 의료기기를 다루는 회사 사무실 한쪽에다 작은 텃밭을 일구며 농부의 꿈을 키웠다. 함씨는 “회사에 빈 텃밭이 있어 허브 식물도 길러보고 씨부터 뿌려 여러 작물도 키워봤다”면서 “아침에 일찍 출근하거나 점심시간을 투자하는 등 부지런을 떨어야 했지만 회사 생활에서 찾기 어려운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함씨는 점점 전문적인 농업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에서 농기구를 직접 접하기 어려워서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농기구 사용하는 법을 살펴보거나 농기구 종류, 가격 정보도 얻는다”고 귀띔했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7년간 거주했다는 이수정(54ㆍ가명)씨는 되레 ‘타향’이 그리워 농사일을 배우고 있단다. 이씨는 “네덜란드와 독일은 선진국이지만 농업 강국이기도 해서 도시나 근교 어디에서나 텃밭을 가꾸는 게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도시에 살면서도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가족, 이웃들과 농작물을 기르고 함께 나누는 삶을 꿈꾸고 있다.

손수 기른 농작물을 먹는 즐거움도 농사의 기쁨 중 하나다. 임지은(64ㆍ가명)씨는 줄곧 서울 생활을 하다 남편의 은퇴 시점에 충남 서산에 경작지를 마련하고 귀농 생활을 하고 있다. “농사는 땀 흘린 만큼 거둔다”는 게 임씨의 지론. 임씨는 “나와 내 가족이 먹을 거란 생각에 정성을 듬뿍 담아 기른 채소, 과일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단 맛을 낸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감자, 고구마, 콩, 깨 등 이것저것 길렀지만 경험이 쌓이고 난 뒤부터는 작목을 단일화해 더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이를 지켜본 지인들이 밭 한 뙈기 얻으려고 줄을 섰다”고 말했다.

◇넓어지는 도시 텃밭

인구 밀도가 높고 각종 사회 인프라가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에선 농사 지을 공간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난제다. 서울시는 자투리 텃밭, 옥상 텃밭, 학교 텃밭, 상자 텃밭 등 텃밭을 유형별로 나눠 농사 지을 수 있는 공간을 넓히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재개발이나 도심 정비사업을 하다 발견하는 자투리 땅을 텃밭으로 조성하는 방식이 꽤 효과적이다. 국ㆍ공사유지, 폐부지, 쓰레기장 등 방치된 부지 중 3년 이상 사용 가능한 공간은 자치구마다 매년 2곳 이상씩 텃밭으로 만들 것을 권장한다. 이렇게 조성된 자투리 텃밭은 서울 전역에 700여곳이 넘는다. 이런 노력 덕에 서울 전체의 도시농업 공간은 2017년 기준 170㏊로, 2012년(84㏊)에 비해 약 2배 이상 확대됐다.

도시농업정책이 확대되면서 꼭 귀농ㆍ귀촌을 하지 않아도 농사를 짓는 길은 넓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3년 처음으로 도시농업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주말농장이나 학교 텃밭, 건물 옥상농원 등 도심 속 경작 공간을 넓히기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해 왔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104㏊에 불과했던 도시 텃밭은 2018년 1,300㏊로 8년 새 10배 이상 넓어졌다. 도시농부도 같은 기간 15만3,000명에서 212만1,000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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