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로 타의로 3, 4세대 전면에… 해외 유학파ㆍ소통 강조
경제 환경 쉽지 않고 경험 부족, 뚜렷한 성과 낼지 미지수
[저작권 한국일보] 주요그룹 총수 - 송정근 기자/2019-03-31(한국일보)

정몽구(81)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작고) LG그룹 회장,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 박용만(64) 두산그룹 회장, 한중 우호협회장이었던 박삼구(74)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동행한 경제사절단이다.

6년 뒤인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최한 ‘기업인과의 대화’엔 이재용(51)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49)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최태원(59) SK 회장, 구광모(41) LG 회장, 신동빈(64) 롯데 회장, 박정원(57) 두산그룹 회장, 정용진(51) 신세계 부회장, 정지선(47) 현대백화점 회장 등이 참석했다. 불과 몇 년 사이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확 젊어진 것이다.

여기에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에 따라 전격 사퇴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까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주요그룹 중 10년 넘게 총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60대 이상 오너는 허창수(71) GS그룹 회장, 김승연(67) 한화그룹 회장 정도다.

재계를 이끌던 1,2세대 총수들이 물러나고 비교적 젊은 나이인 40,50대 3,4세 리더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파로 아버지 세대와 달리 불필요한 격식을 배제하고 소통에 능한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 앞에 놓인 기업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전세계적인 불황과 치열한 기업간 경쟁 속에 자신의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에 선 셈이다.

◇직원들과의 격의없는 소통이 강점

40,50대 젊은 총수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을 통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14년부터 삼성전자 경영을 총괄해온 이재용 부회장은 일본 게이오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ㆍ박사 과정을 밟았다. 지난해 LG그룹 총수가 된 구광모 회장은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공부했고, 역시 지난해부터 현대차그룹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젊은 총수 그룹의 맏형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 신격호 총괄회장에 이어 롯데그룹을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도 미국 컬럼비아대 출신이다. 이 밖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브라운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보스턴대) 등도 모두 해외 유학파다.

이들은 카리스마를 앞세운 강력한 리더십으로 앞장서 기업을 이끌었던 1,2세대 기업인들과 달리 직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소통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직원들의 요청에 즉석 셀카를 함께 찍는 모습이 공개됐다. 모두 선대 회장 때는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최태원 회장은 직원들과의 정기적인 대화에서 격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정의선 부회장은 복장 자율화와 정기 공채 폐지 등으로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바꾸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과거 시절에는 용납되기 어렵던 직원 친화적인 근무제도가 재계 전반에 속속 도입 되고 있다”며 “일의 효율을 위해 직원들의 휴식과 재충전에 신경 써야 한다는 젊은 총수들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ICT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

이들은 미래 먹거리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에 적극 투자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를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1위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이 분야 투자를 늘리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자율주행과 전기차 등의 미래차 개발에 14조7,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그는 현대차가 자동차기업이 아닌 ICT기업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직원들에게 강력하게 전파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일찌감치 ICT 분야에 관심을 갖고 하이닉스를 인수했고, 이 기업은 현재 그룹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핵심 계열사가 됐다. 구광모 LG 회장 역시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전기차 배터리와 자동차 전장 사업 등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미국에 식료품 매장과 식당을 결합한 ‘그로서란트’ 매장을 내는 등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고, 기존 유통업에서 화학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신동빈 롯데 회장은 혁신을 위한 ‘디지털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첨단 산업이 이들의 공통 관심사다.

◇경영 능력 입증해야 하는 과제

실용적인 사고와 소통 능력이 강점이지만 이들이 아버지, 할아버지 때와 같은 경영 성과를 올릴지는 미지수다. 유례없는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글로벌 시장 경쟁도 격화 되는 상황에서 자신 만의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시장에 안착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창업주나 2세대 총수들이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으며 경영을 배운 것과 달리 이들은 해외 유학 기간이 길어지면서 현장 경험을 쌓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새로운 사업은커녕 선대 회장들이 일군 사업 성과를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이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거란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40,50대 젊은 총수들이 아버지 세대에 비해 현장 경험이 부족하고 또 아직 조직 관리나 사업 측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기업 경영 환경이 과거와 비교해 결코 유리하지 않은 만큼, 투자 등 중요 기업 의사결정을 내릴 때 성과를 내겠다는 조바심을 갖고 접근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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