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빅딜’이 대거 추진되면서 심사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긴장하고 있다. 유료방송에선 ‘빅3’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의 몸집 불리기, 조선업계에선 세계 1,2위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결합, 게임업계에선 시가총액 15조원의 넥슨 매각이 줄줄이 당국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공정위 입장에선 심사를 제때 마치려면 업무 처리를 서둘러야 할 판이지만, 저마다 시장 경쟁구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들이라 심사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송ㆍ조선ㆍ게임… 이어지는 ‘빅딜’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29일 SK브로드밴드로부터 티브로드 합병 관련 임의적 사전심사 요청서를 접수했다. 임의적 사전심사는 기업결합을 하는 회사가 계약 체결 전 공정위에 먼저 심사 통과 가능성을 타진하는 제도다. 사전심사라곤 해도 기업결합심사와 동일한 절차로 진행되고, 실제 결합 땐 다시 정식 심사를 거쳐야 하는 터라 공정위 입장에선 업무 부담이 두 배다.
앞서 지난 15일에는 LG유플러스가 CJ헬로 인수와 관련해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했다. 인수 규모는 8,000억원으로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1조원대 예상)보다 작지만, M&A 성사 땐 LG유플러스가 SK브로드밴드를 제치고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2위로 등극한다.
이들 유료방송업계의 M&A 건이 주목 받는 이유는 또 있다. 3년 전 공정위로부터 합병 불허 결정을 받은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당시 CJ헬로비전)이 파트너를 달리해 재차 결합심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이라도 결합이 승인될 경우 공정위가 비슷한 사안에서 종전 결정을 뒤집었다는 논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그러나 이마저도 올해 줄줄이 예고된 기업결합심사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이르면 오는 5월 진행될 글로벌 조선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과 2위 대우조선해양의 M&A 심사는 올해 공정위 업무의 하이라이트다. 지난 8일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인수 본계약을 체결한 현대중공업그룹은 기업 실사 등을 거쳐 5월 중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유상증자 참여 등의 방식으로 이번 거래에 최대 2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더구나 두 조선업체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도합 21.2%(지난해 말 수주잔량 기준)에 달해 시장 독점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해외 주요국 경쟁당국도 두 회사의 결합을 심사하게 될 상황에서, 가장 먼저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공정위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게임업계에선 국내 1위 업체 넥슨의 인수자를 찾는 본입찰이 4월 중 진행될 예정이다. 일본 증시에 상장한 넥슨의 시가총액(약 15조원)을 감안하면 인수 규모도 10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몰려든 일감에 심사지연 우려도
주무부서인 공정위 기업결합심사과는 잔뜩 긴장한 분위기다. 최근 수년 동안 잠잠했던 대형 M&A 심사 업무가 한꺼번에 몰려든 탓이다. 공정위의 M&A 심사 건수는 2016년 646건에서 지난해 702건으로 꾸준히 증가했지만, 심사에 애를 먹을 만한 대형 계약은 많지 않았다. 최근 3년간 심사한 국내기업 M&A 가운데 5조원 이상 대형 계약은 2017년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합병(19조3,000억원),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9조3,000억원)이 전부다. 1조~5조원 규모의 기업결합 심사도 홈플러스 리츠(3조8,000억원), CJ오쇼핑-CJ이앤엠 합병(3조2,000억원) 정도로, 대부분 기업 내 사업조정을 위한 계열사 합병 건이라 심사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공정위 안팎에선 업무 부담 폭증으로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심사 기간은 최대 120일로 규정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3년 전 SK브로드밴드-CJ헬로 합병 심사도 기업결합 신고 이후 합병 불가 결정까지 8개월이 소요됐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굵직한 M&A가 늘어나 업무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심사 대상이 많더라도 실제 심사 기간을 좌우하는 것은 기업 제출 자료를 보정하는데 드는 시간이라 충실한 자료 제출만 담보되면 크게 늦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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