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장점이 없는 선수입니다.”
명실상부 한국프로골프(KPGA)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 박상현(36ㆍ동아제약)이 스스로에게 내린 평가다. 박상현은 지난해 KPGA 3개 대회 우승을 휩쓸며 상금왕에 올랐지만 정작 자신에겐 누구보다 냉정했다. 지난 29일 경기 성남의 남서울CC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박상현은 “다른 선수들처럼 퍼터나 드라이버가 최고라고 말하긴 어렵다”며 “큰 기복 없이 상위권 내에서 우승경쟁을 하며 거북이처럼 실력을 끌어올린 게 비결 아닌 비결”이라고 고백했다.
지난해 박상현은 2005년 프로 데뷔 이래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KPGA 투어에서 3승을 거두고 최다 상금(7억9,006만원)을 획득하며 첫 상금왕에 올랐다. 시즌 평균 69.133타로 최저타수상과 함께 기자단이 선정한 베스트 플레이어상까지 휩쓸며 3관왕을 차지했다. 박상현은 “지난해 만년 2위 꼬리표를 떼고 상금왕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 14년 프로골퍼 인생에서 최고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80점이다. 박상현은 “100점을 줄 수도 있겠지만 20점은 남겨두고 싶다”며 “그래야 더 훈련하고 노력해서 다음 20점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2018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도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거북이처럼 묵묵히 골프에 임했을 뿐이다.
박상현은 한 순간 경기력이 상승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지난해보다 올해가 낫고, 올해보다 내년이 나은 선수가 되고 싶었다”며 “벽돌이 한 장 한 장 쌓이는 것처럼 조금씩 성장했고 그게 성적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팬들이 제가 자주 상위권에 있어 20승은 한 걸로 아시는 데 통산 우승은 9승밖에 안 된다”고 미소 지었다. KPGA 통산 상금랭킹에서도 32억7,253만원을 기록, 2위 강경남와 3위 배상문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꾸준함’에서는 정상을 내주지 않고 있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미국프로골프(PGA)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디 오픈과 CIMB 클래식, CJ컵, 월드골프챔피언십(WGC) HSBC 챔피언스에 이어 지난 2월에는 WGC 멕시코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PGA의 벽은 높았지만, 배운 점도 많았다.
박상현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로 잰더 쇼플리(26ㆍ미국)를 꼽았다. 박상현은 “쇼플리는 키도 177㎝이고 체격도 그리 크지 않지만 장타자가 즐비한 세계무대에서 특유의 유려한 스윙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며 “두 눈으로 직접 보니 한국 선수들이 참고해야 할 교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아시안, 유러피언투어까지 4개 투어 시드를 확보한 박상현은 올해 최대한 많은 유럽 대회에 참가해 ‘공부’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박상현은 “상반기 일본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시드권을 확보하고 나면 유러피언투어에 전념할 생각”이라며 “한국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3~4개 대회에 나선다”고 시즌 계획을 밝혔다. 이어 “일본에서 2승, 한국에서 1~2승 정도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세계를 누비느라 집을 자주 비울 수밖에 없어 가족들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박상현은 “집에 올 때마다 큰 아이가 “몇 밤 자고가?”냐고 물어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시즌이 끝나고 휴식기에는 집에만 있으니까 “아빠, 골프 치러 안 가? 포기한 거야?”라고 하더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었을까. 최경주 재단을 통해 남몰래 어린 학생들을 도와온 박상현은 지난 9월에는 신한동해오픈 우승 상금의 절반인 1억원을 어린이 소아암환자를 위해 기부한 바 있다. 메인스폰서 동아제약도 함께 1억원을 쾌척했다. 박상현은 “도움이 됐다는 사실에 행복할 뿐이다. 올해도 성적 잘 나와서 또 기부하는 게 목표”라며 미소 지었다.
골프선수로서 박상현의 마지막 꿈은 늘 지금처럼, 꾸준한 성적으로 시니어까지 선수로 뛰는 것이다. 개인의 욕심보다 후배들을 위해서다. 박상현은 “몸 관리 잘해서 후배들이 해외에서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게 조언도 해주고 협찬 받은 제품들까지 물심양면 도와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에서 봤던 임성재도 공을 잘 치지만 인간성 역시 좋은 후배였다. 미국으로 빨리 갔으면 좋겠다 했는데 바로 가자마자 잘 하는 것 보면서 ‘역시는 역시다’라고 생각했다”며 “그런 후배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더 많아질 거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권현지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