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을 ‘폭행 또는 협박’ 여부로 협소하게 규정한 현행법의 강간죄 구성 요건 개정을 위해 여성인권단체들이 뭉쳤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09개 여성인권단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는 지난 30일 보도자료를 내어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규정할 것을 촉구한다”며 “국회의 행보를 주시하며 성폭력에 대한 패러다임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전환하기 위한 법 개정 및 성문화 바꾸기 운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법조계는 강간죄의 범위를 좁게 해석해 명확한 강간만을 처벌하도록 하는 ‘최협의설’을 따라 왔다. 강간ㆍ추행이 인정되려면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폭행과 협박을 당하고, 그것이 현저히 저항이 곤란한 정도여야 하며,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미투 운동을 거치며 이러한 최협의설이 성폭력 범죄의 현실과 맞지 않고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야기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현재 국회에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변경하거나 비동의간음죄를 별도로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 8개가 상정됐다. 4월 1일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연대회의는 여성가족부의 2018년 보고서를 인용해 “폭행, 협박 없는 성폭력은 폭행과 협박을 필요로 하지 않는 권력관계나 속임수, 가해자에 대한 신뢰를 이용해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등 다양한 가해자의 전략, 전술에 의해 전개되고 있었다”며 “여전히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범죄의 피해자로 인정받기도 어렵고 더 나쁜 경우 무고의 피의자로 의심되거나 처벌받을 우려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6년 한 해 자료를 보면 성폭력 기소율은 41.8%에 불과하다”며 “같은 해 성폭력 신고율이 1.9%에 불과해 암수율이 매우 높은 범죄라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현행법 규정과 ‘최협의설’에 따른 수사, 재판 관행이 만들어낸 성폭력의 법적 처벌 공백은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고 비판했다.
연대회의는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을 향해서도 “‘동의’ 여부에 초점을 둔 구성요건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의 의사에 반하여ㆍ명백한 거부의사 표시에 반하여’ 등과 같이 구성요건을 규정할 경우 다시 성폭력 피해자에게 ‘얼마나 저항했는가’, ‘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이 돌아와 사실상 최협의설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대회의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2017년 ‘성범죄의 정의가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에 기반을 둔 강압적인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장하라’고 일반권고에 명시하는 등, 국제적으로는 이미 성폭력의 주요 판단기준을 ‘동의’ 여부로 보고 있다”며 “피의자와 피고인에게 ‘어떻게 동의를 구하였는가’, ‘무엇을 근거로 동의 여부를 판단하였는가’를 질문하도록 형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