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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에도 정방폭포에도 슬픈 사연… 71년이 지났어도 상처는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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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에도 정방폭포에도 슬픈 사연… 71년이 지났어도 상처는 현재진행형”

입력
2019.03.31 18:00
수정
2019.03.31 19: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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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토박이 허영선 작가 4ㆍ3 사건 다룬 ‘당신은…’ 출간

제70주년 4ㆍ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지난해 4월 3일 제주 4ㆍ3평화공원에서 한 희생자 유가족이 행불자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제70주년 4ㆍ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지난해 4월 3일 제주 4ㆍ3평화공원에서 한 희생자 유가족이 행불자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맘때 제주는 노란 유채꽃과 연분홍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섬 곳곳이 색색으로 물든다. 봄 꽃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제주의 4월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6개월에 걸쳐 제주도 전역에서 무력충돌과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제주 4ㆍ3 사건의 달이기도 하다.

71번째 4월 3일을 앞두고 출간된 허영선 작가의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은 끝나지 않는 아픔, 제주 4.3 사건의 기억 한복판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제주 출생 언론인이자 시인, 전 제주 4.3평화재단 이사, 현 제주 4.3제주 연구소 소장인 ‘제주 토박이’ 저자가 4.3 사건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기억을 토대로 문장을 풀어나갔다. 한겨레신문과 제민일보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과 새로 쓴 산문을 한데 엮은 것이다.

71년이 지났어도, 희생자들에게 제주 4.3 사건의 트라우마는 계속된다. “난 고사리를 먹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은 제주시 노형동의 현 할머니의 사연을 담고 있다. 현 할머니는 열네 살 소녀였던 당시 생고사리를 따러 간 자신을 마중 나오던 아버지가 순경들의 총에 맞아 죽은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사리를 먹지 않는다. “아버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총 팡 쏘니까 겁이 나서 서녘 밭으로 들어갔어요. 뛰니까, 도망친다고, 순경들이 쏘아버린 모양입니다(…) 나 때문에 고사리 마중 나갔다 죽었다고 막 소문 파다했어요. 장례 치르고 나니 가을 들었어요. 난 고사리가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허영선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의 표지. 마음의숲 제공
허영선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의 표지. 마음의숲 제공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 끄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제주는 풀 한 포기, 사물 하나하나에 슬픈 기억이 서려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70년 전 정방폭포에서 부모가 학살되는 장면을 보았던 80대 김복순 할머니는 폭포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맡겨두고 어머니만 희생된 곳이 성산포 터진목임을 뒤늦게 알았다는 칠순 강숙자에게 이곳은 아픈 공간이다. 학생복 입은 채 표선 백사장에서 집단 희생된 남편의 모래 범벅 주검을 찾고 통곡을 삼켰던 아흔의 해녀 오순아에게, 백사장은 가슴 저미는 공간이다.

지난해 70주년을 맞아 정부 차원의 4.3 사건에 대한 올바른 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허 작가는 “정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4.3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작가는 “제주에 온 이들은 자연 앞에 아름답다 찬사를 보내면서 제주가 더 변하지 말았으면 하지만, 사실 변치 않는 제주의 얼굴은 4.3”이라면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신들의 섬이지만, 그 절경 뒤편에는 아직 해원하지 못한 수많은 목숨의 원통함이 스며 있기 때문에 한라산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되 그곳을 도피처로 삼고, 동백꽃처럼 비명도 없이 쓰러져 간 사람들도 함께 떠올려주기를” 당부했다.

허 작가는 고통이 생생한 한, 4.3 사건에 대한 추모는 70주년에만 반짝 이뤄지고 끝나서는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70년에도, 71년에도, 4.3을 겪은 이들에게는 매번 ‘현재 진행형’의 역사입니다. 힘겹게 삶을 이어왔던 생존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고, 남은 생존자와 유족들은 여전히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과거의 아픔으로 빚은 거울이 현재를 비추고, 이 거울이 미래를 향해야만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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