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디가 아프면 어떤 병원에 가야 할지 안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물어봐서라도 맞는 병원에 찾아가려고 고심한다. 자연스럽게 이비인후과에는 목이 아픈 사람, 정형외과에는 무릎이 아픈 사람, 안과에는 눈이 아픈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응급실은 그 과정이 생략된다. 어디 부위가 아프더라도, 어떻게 불편하더라도, 그냥 응급실로 가면 된다. 일단 응급실에서는 어디가 어떻게 아프더라도 진료가 가능하다는 신뢰가 있는 셈이다.
의사 입장에서 그 자리는 꽤 까다롭다. 언제 어떤 환자가 어떤 증상을 호소하면서 올지 모른다. 그와 동반하는 각종 질문 세례에도 주저없이 답해야 한다. 중한 상태의 환자부터 아주 경한 환자까지 있다. 심지어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들 대부분은 중하다고 호소하므로, 어떤 환자가 더욱 중한지 가려내기도 해야 한다. 또 환자들은 세분화된 의학 분야 중 하나에 속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애매하게 이 분야와 저 분야 사이에 걸터앉아있기도 한다.
그러니 응급의학과 의사는 의학의 주요 분야를 필수로 숙지해야 한다. 실제 응급의학이라는 학문은 다른 의학 분야에 많이 빚지고 있다. 응급의학 교과서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주요 의학을 골자로 시작하여, 심정지, 중독, 외상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전문 분야가 막막할 정도로 넓다. 점점 다른 분야를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현대 의학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는 그 분야의 두세 번째 전문가이기도 하다. 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해 흉관을 응급의학과 의사가 넣거나, 산부인과 의사가 혈압이 떨어지는 환자를 문의하기도 한다.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응급의학이라는 학문을 기반으로 환자를 분류하고 치료할 수 있는 범위까지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책임진다. 이후 수술이나 입원 등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응급의학과 의사는 다른 과 의사를 호출한다. 꼭 호출하지 않아도 전화를 걸어 환자에 대해 상의할 일도 많다.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기에 환자에게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경우도 많다. 전문가로 응급실에 있으면서 환자에게 모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처음 응급실에서 근무하면 모른다고 말하는 방법부터 배운다. 여기까지는 내가 알고 있고, 이제부터 나는 이렇게 알고 있지만, 안전을 위해 세부 전문가와 상의 후 결정할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절대적으로 다른 의사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 의사는 아니다. 어차피 현대의학은 첨예하게 세분화되어 있어서, 하나만 제대로 공부하려고 해도 평생을 수학해야 한다. 또한 의학은 광대하고, 인간은 그 많은 학문적인 지식이나 수치를 현장에서 정확하게 외울 수 없다. 실은 모든 것을 외우고 정확히 알고 있다는 가정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내가 당연하게 기억하는 수치나 사실이 헷갈리거나 틀릴 수도 있다. 인간이라면 그 한계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한계가 고립될 경우, 다루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므로, 돌이키지 못할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할 경우가 최악이다. 그래서 응급의학과 의사의 일에는 알지 못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위해 자신이 포용할 수 있는 한계를 인지하고,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에서 한 분야를 수학한 전문가가 갖춰야 할 필수 소양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한도에서는 전문가적으로 합당한 견해를 내며 최선을 다해 해결하고, 나머지 자신이 가닿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선을 그어 다른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이 모른다고 말하는 전문가 사이의 공조가 합리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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