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사지휘, 검사의 ‘빨간펜’
※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영화 '부당거래'의 스틸컷. 부동산 업계 거물에게 스폰서를 받는 검사 주양(왼쪽) 광역역수사대 소속 경찰관 최철기(오른쪽)가 자신의 스폰서를 구속시키자 최철기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네이버영화 제공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할 뻔 했구만. 내가 잘못했어. 경찰들 불쾌할 수 있으니까 하지마!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에서 검사 주양(류승범 분)이 남긴 명대사는 검사와 경찰의 수사지휘에 얽힌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 검사는 경찰이 내사 중인 사건의 자료를 요구하다가, 경찰이 불쾌해 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자 자료 요구는 검사의 정당한 권한이라고 맞받아친다.

검사가 일선 경찰관에게 전화해 강압적 태도로 지시하거나, 때론 군기를 잡는 모습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수사지휘’의 흔한 장면(클리셰)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는 경찰에게 고압적 태도로 지시하고, 전화 한 통으로 경찰의 수사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리기도 한다.

◇수사지휘는 대부분 서류작업

그렇다면 실제 이뤄지는 수사지휘도 영화와 같은 모습일까? 역대로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있을 때마다 경찰은 반발하고, 검찰은 고유의 권한이라며 내놓지 않겠다는 검찰 수사지휘권의 내막은 알려진 바와 달랐다.

수사지휘권은 법에 따라 검사에 부여된 권한이다. 형사소송법 196조는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고 규정한다. 한 해 발생하는 약 200만 건의 형사사건이 모두 지휘 대상이다. 한국 형사사법 구조상 경찰은 법원에 영장을 직접 요구(청구)할 수도 없고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 수(기소) 없기 때문에, 모든 형사사건은 검사의 손에서 결정되고 최종적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일선 검사와 경찰관을 통해 취재한 수사지휘의 참모습은 영화보다 훨씬 정적인 ‘서류작업’에 가까웠다. 수사지휘는 전화나 구두로 진행되기보다, 서면이나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통해 이뤄진다. 담당 경찰관이 수사기록 및 관련 보고를 관할검찰청 사무과에 접수하면, 검사가 기록을 검토하고 코멘트를 달아 되돌려 보내는 식이다.

경찰 사건의 수사 초기부터 검사가 관여하는 이른바 ‘사전 지휘’도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 공안 등 일부 사건이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합동수사’ 사건을 제외하면, 검사들도 영장이 신청되면서부터야 사건을 인지한다. 불구속 사건은 아예 검찰로 사건이 넘어오는(송치) 단계에서 처음 접한다.

이런 식의 수사지휘가 자리잡은 것은 대략 2011년부터다. 당시 수사권 조정 논의의 결과로 ‘수사지휘 및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져, 서면(수사지휘서)을 통한 수사지휘와 서면의 양식이 명문화됐다. 검사는 천재지변이나 긴급상황 등에만 구두로 지휘할 수 있고, 이 경우에도 경찰은 서면을 요구할 수 있다.

경찰 송치 결론과 검찰 처분이 달라지는 사건. 그래픽=송정근 기자
◇수사지휘는 형사부 검사의 일상

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형사부 검사의 일상적인 업무가 바로 수사지휘다. 보통 검사 한 명당 한 달에 150~200건 가량의 사건이 경찰에서 넘어온다고 한다. 기록이 수십 쪽에 불과한 단순 사건도 있지만, 기록이 많은 날엔 서류 운반용 수레가 동원돼 검사실에는 서류의 산이 쌓인다. 모든 사건은 검사실에 배당되는 순간부터 ‘미제’로 구분되는데, ‘장기미제’를 막기 위한 사투가 그때부터 시작된다. 수사지휘는 잘한다고 티가 나진 않고, 만에 하나 실수를 해 경찰이 문제 삼는 날엔 날엔 “검사 망신 다 시킨다”는 내부 핀잔을 면하기 어렵다.

서류더미를 넘겨받은 검사가 처음 해야 할 작업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지시할지, 아니면 경찰 수사를 토대로 절차를 진행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작업은 당일 처리가 원칙이고, 늦어도 4, 5일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쉴 틈 없이 종이를 넘겨야 하니, 형사부 검사들은 서류를 넘기는 데 필요한 골무를 사용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고 그냥 서류만 보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일. 수사의 법리적 오류나 법적 문제를 바로 잡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선 추가수사를 요구하는 게 수사지휘의 핵심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참고할 만한 법 조항, 법원 판례를 함께 수사지휘서에 적어 경찰에 알려줘야 한다.

검사가 경찰에 보낸 수사지휘서의 실제사례. 뺑소니 피의자의 알리바이를 다시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다.
◇검사의 본분은 사건을 바로잡는 빨간펜

검사들이 말하는 수사지휘의 핵심은 법리검토다. 한 간부급 검사는 “재판은 법률전문가(판사ㆍ변호사)들을 상대로 법으로 싸우는 전쟁터”라며 “수사지휘는 검ㆍ경의 수사가 재판에 내놓아도 법적인 오류가 없는지 검토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수사지휘서에는 수사에서 잘못 적용된 법 조항의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경찰 수사의 결과가 검찰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한 해에 3만~4만 건이다. 지난해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 중 2만2,318건이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경찰이 죄가 안 된다고 올린 사건에서 검사가 죄를 발견해 기소한 경우는 3,189건, 불구속 피의자를 직접 구속한 사례는 2,409건이다.

2013년 지적장애 여성에게 술을 사준 뒤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A씨가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적장애로 적극적 거부나 항거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 의견이 있었지만, 경찰은 “성폭력은 당하지 않았다”는 여성의 진술을 근거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사는 경찰이 적용한 성폭력처벌법 제6조 5항(위계ㆍ위력 장애인 간음) 대신 같은 법 제6조 4항(장애인 준강간)을 적용하도록 지휘했고, 결국 A씨는 구속됐다.

반대로 피의자가 무죄임을 입증하거나 다른 진범을 찾는 것도 검사가 해야 할 일이다. B씨는 2016년 6월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고 달아난 혐의로 체포됐다. 피해자와 목격자가 모두 그를 범인으로 지목해, 그가 진범인 것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경찰은 목격자에게 “이 사람이 범인이냐”며 B씨 사진만 보여줬는데, 이를 발견한 검사는 B씨의 알리바이도 확인하도록 지휘했다. 결국 경찰은 B씨 휴대폰에서 범행시각 택시에서 내리며 결제한 내역을 확인, 추가 수사를 통해 진범을 잡았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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