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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문서’가 하노이 결렬 불렀나… “사실상 CVID 요구, ‘리비아 해법’ 근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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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문서’가 하노이 결렬 불렀나… “사실상 CVID 요구, ‘리비아 해법’ 근접”

입력
2019.03.3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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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터통신, 문서 입수해 보도… 구체적 내용 처음 공개돼 

 핵신고ㆍ새 시설 건축중단ㆍ과학자 전직 등 4대 요구 담겨 

 “북한, 이미 수차례 거부한 내용과 동일… 모욕감 느꼈을 것”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오른쪽 두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이 양측 참모들이 배석한 가운데 확대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하노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오른쪽 두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이 양측 참모들이 배석한 가운데 확대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하노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도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넸다는 ‘빅딜 문서’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났다.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넘기고, 모든 핵시설과 탄도미사일에다 화학ㆍ생물학전 프로그램까지 모두 해체시키라는 직설적이고 포괄적 요구가 담겨 있는 문서였던 것이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해결 기본 원칙이었으나 북한이 거부감을 표했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 문서를 입수했다면서 “미국은 북한에 핵시설과 화학ㆍ생물학전 프로그램, 이와 관련한 이중 용도 능력(탄도미사일과 발사대) 및 관련 시설 등의 완전한 해체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또, 미국이 북한 핵무기의 미국 이전 요구와 함께, 핵심 사항 4개도 요구했다고 전했다. 곧, △핵 프로그램에 대한 포괄적 신고 및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찰단에 대한 완전한 접근 허용 △모든 관련 활동 및 새로운 시설물의 건축 중단 △모든 핵 인프라 제거 △모든 핵 프로그램 과학자ㆍ기술자들의 상업적 활동 전환 등이다.

미국의 이 같은 요구사항은 그동안 북한이 “패전국에나 적용하는 방식”이라며 거부해 온 ‘리비아식 해법’과 가깝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리비아식 해법이란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해 왔던 모델로, 먼저 핵을 폐기하고 이를 완전히 검증한 이후에 수교나 경제지원 등의 상응조치를 취하는 것을 뜻한다.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인 셈인데,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원칙이었던 CVID와 사실상 동일한 셈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여 왔고, 미국도 비핵화 원칙을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로 다소 완화했다.

이번 빅딜 문서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대목은 ‘핵 과학자와 기술자의 상업활동 전환’ 부분이다. 옛 소련 국가들의 비핵화 지원에 적용한 ‘넌-루가 법안’ 모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마무리 이후에 상황이 바뀐다 해도 또 다시 핵무기 개발에 나설 가능성 자체를 최대한 차단하겠다는 의중을 담은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이러한 ‘완전한 비핵화’ 조치들을 한꺼번에, 그리고 즉시 이행하라고까지 요구했을 가능성은 적다. 큰 틀에서 먼저 합의를 이룬 뒤, 단계적 이행을 추진하는 밑그림을 그렸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영변 폐기 대 민생제재 해제’라는 자신들의 요구에다 미국 측이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가에선 이 한 가지가 로이터통신 보도에 등장하는 ‘모든 관련 활동 및 새로운 시설물 건축 중단’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자신들의 ‘정의’에 북한이 먼저 동의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1단계 이행 조치로서 추가 핵물질 생산 억제를 위해 “관련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새 시설물 건축도 멈추라”고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제안한 빅딜 문서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된 것은 처음으로, 이는 하노이 회담 결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모독’으로 느꼈을 법하다는 말이다.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제니 타운 연구원은 빅딜 문서에 기재된 미국의 요구들에 대해 “볼턴 보좌관이 처음부터 원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며 “미국이 정말로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려면 이런 접근법은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러한 요구들은 그동안 몇 차례나 (북한한테서) 거절당해 애당초 합의 가능성이 없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거론하는 건 (북한에게는) 다소 모욕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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