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법무법인은 ‘적법한 수령’이라는 법률적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 21일 김강열(58) 전 시민생활환경회의 대표를 신임 광주환경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하면서 이례적으로 입장문까지 내고 이런 얘기를 했다. 김 이사장이 환경단체인 시민생활환경회의 대표로 활동할 당시 무보수 명예직으로 규정된 법인 정관을 어기고 급여와 활동비 등을 받아 챙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횡령 의혹이 불거진 데 대한 해명이었다. 당시 김 이사장 임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컸던 터라, 김 이사장이 낙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예상을 뒤엎고 보란 듯이 임명을 강행했다. 당장 시청 안팎에선 “너희가 아무리 반대해도 임명하면 그만이라는 오만을 부린 것 아니냐”는 뒷말이 새어 나왔다. 이 시장이 이처럼 정면 돌파를 선택한 데는 “대표로 활동할 당시 상임이사를 겸직했기 때문에 상임이사 활동비를 받은 것”이라는 김 이사장의 주장을 신뢰한 측면이 컸다.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환경단체 대표의 말인 데다, 법무법인이 “적법하다”고까지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이 시장이 그토록 믿었던 ‘적법한 수령’은 시간이 지날수록 ‘횡령’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있다. “대표와 상임이사를 겸직했다”는, 김 이사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뚜렷한 근거가 없는 탓이다. 김 이사장은 2012년 5월 9일 시민생활환경회의 대표로 취임한 후 3년 임기를 마치고 2015년 5월 9일 퇴임했다. 김 이사장은 당시 주무관청인 환경부에 임원(이사) 변경 사항을 보고하면서 상임이사를 별도로 지정하지도 않았다. 김 이사장이 퇴임한 이후 두 번째로 대표에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2월 27일까지 시민생활환경회의엔 아예 등기이사도 없었다. 더구나 김 이사장은 두 번째 대표를 맡으면서도 환경부에 임원 변경 사항도 보고하지 않았다. 김 이사장이 대표와 상임이사를 겸직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공식 서류나 근거 자료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김 이사장은 2012년부터 올해 1월 대표직을 사임할 때까지 1억원이 넘은 활동비를 받았다. 이쯤 되면 “횡령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는 비판에 대해 김 이사장은 별로 할 말은 없어 보인다. 시민생활환경회의 측은 “김 이사장이 대표로 활동할 당시 임원 변경 사항에 대한 등기와 환경부에 보고하는 것을 게을리했던 같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상임이사를 맡으며 실무활동을 해오던 김 이사장이 2012년 대표로 취임할 때 이사장단회의에서 대표가 상임이사를 겸직하는 것으로 구두 결의했고, 총회에서도 자료집을 통해 대표가 연임한다는 내용을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정관 규정에도 없는 대표와 상임이사 겸직 문제를, 그것도 법인 자금 지출이 수반되는 중대한 사안을 이사진 몇 명이 구두로 결의한 뒤 정기총회에선 정식 안건으로 채택도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갔다는 얘기였다. 해명 치고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김 이사장에게 향하던 비난의 화살이 이 시장과 광주시의회로도 향할 것”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인사청문회까지 열었던 광주시의회의 부실한 도덕성 검증과 이 시장의 인사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시장이 김 이사장 임명을 밀어붙인 진짜 속내야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여론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한 걸 두고 이 시장이 1월 말 광주형 일자리 협상 타결 이후 생긴 시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실제 이 시장은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주광역시장 이용섭. 제 이름 석 자에 광주의 미래가 달려 있고, 150만 광주시민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는 글을 남기며 우쭐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 “이 시장이 너무 기고만장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까. 이 시장은 “시민이 맡겨주신 인사권을 남용하거나 사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시장인 저를 믿고 맡겨달라”고만 할 게 아니라, “인사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는 비판을 들은 데 대해 겸허히 반성부터 해야 한다. 사족 하나.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이 시장 말대로, 이 시장을 믿고 (인사권을)맡길 수 있을까요?” 이 시장이 답해야 할 차례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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